탁마의장

야단법석

해탈은 구할 수 없는 것

작성자 : 청정심추천수 : 0조회수 : 3,873

16-03-06 17:14

본문

 

 

 

 

---  물론 '무언가를 찾지 않을 때만 얻을 수 있다' 는 말이

 

혼란스럽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한잔의 커피라도 나서서 구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적 머리로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찾고 노력하고 추구해야먄 그것을 얻거나 실현할 수 있습니다 .

 

그러므로 해탈을 발견하기 위한 비밀의 열쇠는 '해탈을 '구하지 않는  것' 이라는 말을 들을 때

 

이성적인 머리로는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운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해탈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해탈을 구할 수 없습니다.

 

다만 상서로운 동시성이 있을 때, 바른 받아들임이 있을 때,또는 올바른 관점일 때 해탈은 저절로 일어날 것입니다.

 

해탈은 이미 우리 의식의 무대에서 춤추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바로 지금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특별한 방법이 있을 까요?  실제로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은 오랜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마음상태에서 쉬어라."

 

이것은 효과적이고 역동적으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입니다.

 

'쉬다' 라는 말에는 많은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단지 일상적인 의미로 쉰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저 소파에 앉아 탁자에 발을 올려 놓고 편히 쉬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보다 더 깊은 쉼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쉰다는 것은 마음이 애써 노력하는 모든 걸 중단하는 것입니다.

 

 

 

즉, 무언가를 추구하고, 명상하고, 분석하고, 움켜잡으려고 애쓰는 일을 중단하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없애려 하지도 않고 이루려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단지 마음이 노력하는 걸 모두 놓아버리고 자연스러운 마음 상태에서 머물면 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일일이 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것은 희소식입니다. 우리는 제때 깨달음이 일어나게 해야 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꽤 안심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아침에 해가 떠오르는 걸 봅니다.

 

산등성이 너머로부터 햇빛이 비치기 시작하는 걸 볼 때, 제때 해가 떠오르는 걸 우리가 책임지고 있습니까?

 

전혀 아닙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깨달음에 대해서도 책임이 없습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찾아다니지 않을 때 우리는 조금도 애쓴다는 생각없이 온전히 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떠오르는 해처럼 깨달음이 스스로 빛나게 됩니다.

 

단지 쉼으로써, 깊이 쉼으로써 해탈이 일어남을 알게 될 때 매인 마음은 조용히 물러갑니다.

 

우리가 신이나 진리 혹은 영원한 자아를 찾아다니는 한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매우 빨리 그것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게만 될 것입니다. 

 

반면에 깊이 쉰다는 건 더 이상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깊은 쉼에서 아름다운 고요가 생깁니다.

 

그러면 거기서 청정심을 언뜻 볼수 있고,

 

마침내 우리는 청정심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생략 ---    

 

 

                                                                                                                                      - (아남툽텐스님) -

 

 

댓글목록

달밤 님의 댓글




청정심님 좋은 말씀 올리셨군요. 감사합니다. 온전한 쉼!

윤기붕님의 댓글




좋은 글을 올려 주셨네요.^^
이 말은 정말로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말을 몰라서 해탈을 못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너무 많이 알아서 못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이 좋은 말을 그대로 따라하려 한다면 또 말에 걸립니다.

즉, 쉬려한다면 또 어긋나는 것입니다.

누가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들어가도 30방 나와도 30방"
이라고 할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쉰다는 것은 해탈을 위한 것을 하지 않는 것이지 삶을 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일부러 쉬려고 한다면 이미 뭔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말합니다.
"들어가도 삼십방 나와도 삼십방"

청정심 님의 댓글




네 선생님 .. 그래서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라고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자연스런마음이란 생각이 있건 없건 상관하지 않는 마음인데 이게 쉽지는 않지요.
그래도 공부는 하되 내가 개입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냐! 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청정심  저도 그랬었지요.^^

우리 생각은 자신도 모르게 뭔가 자꾸 하려하지요.
그래서 지금 님의 말처럼
'내가 개입되지 않는'
이라고 하면 또 내가 개입되지 않는 무언가를 하려 합니다.

그래서 어려운 건데
사실 우리의 삶을 어떻게 하려하지 않아도 아침에 일어나야 하고 남편 출근을 도와야하고 애들 밥도 줘야하는 등 일이 많지요.
남자도 마찬가지구요.^^

그렇게 사는 것이 해탈인데 생각은 그것을 모르니 말만하면 따라가 모양을 지으려하지요.

청정심 님의 댓글



청정심  청정심이 이글을 올린 것은 뭔가 하나를 쥐고서 놓지 않는 지난 날이 생각나서 입니다.
뭔가를 쥐고서 그것을 놓으면 죽을 것 같았기에 그래서 좀 놓으라 하지만 사실 놓을 나도 없는 거지여 ~~^^*

윤기붕 님의 댓글




청정심  ㅎㅎ 맞습니다.
그래서 어떤 조사가 말하기를
"잡을 것(놓을 것)도 없는데 자꾸 쥐려고 하니 놓아라하지."
라고 하였지요.^^

청정심님의 댓글




윤기붕  네 ...그래서 그것이 모두 에고가 하는 짓이라고 분명히 알아야 하는 거지요.. ^^

무무님의 댓글




해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저 지구가 아주 빠른 속도로 도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