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
인연 혹은 연기법에 대하여
작성자 : 달밤추천수 : 0조회수 : 3,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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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혹은 연기법에 대하여>
윤회(輪廻)
바다였다가
인연이 닿으면
잠시 파도였다가
잠시 거품이었다가
다시 바다가 되지
위의 시는 조만간 출간될 본인의 시집에 실린 시입니다. 시를 해설하는 것이 아니고 위의 시를 쓸 때 본인의 심경을 말씀드려보고자 합니다. 도반님들께서 헤아리시고 공부에 도움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거대한 바다에 파도가 일고 거품이 생깁니다. 파도와 거품이 커던 작던 오래 유지되던 잛게 유지되던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바다가 우주고 진리라고 가정해보고 바다를 바탕으로 생기는 파도나 거품은 우리의 삶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바다가 인연을 만나면 파도가 됩니다.(生) 잠시 파도였다가 사라지지요.(滅) 또 인연을 만나면 거품이다가(生) 사라지지요.(滅) 파도나 거품이 사라지면 다시 바다가 됩니다. 우리의 삶은 바다에서 인연에 따라 생기는 파도나 거품이지요. 삶이 끝나면 다시 바다가 됩니다. 사실 파도나 거품일 때도 한 번도 바다가 아닌 적은 없지요.』
바다가 우주나 진리 외에 또 다른 이름을 가질 수도 있겠지요. ‘깨달음’ ‘이 자리’ ‘참나’ ‘자성’ ‘본성’ ‘진여’ ‘법’등으로 일컬어질 수도 있지만 무엇이라도 좋습니다. 모두가 한 가지 의미를 가지니까요. 적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이 자리’로 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바다는 ‘이 자리’입니다. 온 세상 ‘이 자리’가 아닌 것이 없고 모두가 ‘이 자리’이니 ‘이 자리’ 인것도 없고 아닌 것도 없겠지요.
그러면 위의 『 』속의 글에 나오는 ‘바다’를 ‘이 자리’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거대한 ‘이 자리’에 파도가 일고 거품이 생깁니다. 파도와 거품이 커던 작던 오래 유지되던 잛게 유지되던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이 자리’가 우주고 진리라고 가정해보고 ‘이 자리’를 바탕으로 생기는 파도나 거품은 우리의 삶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자리’가 인연을 만나면 파도가 됩니다.(生) 잠시 파도였다가 사라지지요.(滅) 또 인연을 만나면 거품이다가(生) 사라지지요.(滅) 파도나 거품이 사라지면 다시 ‘이 자리’가 됩니다. 우리의 삶은 ‘이 자리’에서 인연에 따라 생기는 파도나 거품이지요. 삶이 끝나면 다시 ‘이 자리’가 됩니다. 사실 파도나 거품일 때도 한 번도 ‘이 자리’가 아닌 적은 없지요.』
사실 ‘이 자리’라는 이야기는 법문에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위의 시를 쓸때는 이미 적천 선생님 책을 읽은 후이기 때문에 위와 같은 감정을 갖고 쓴 것은 사실입니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걸음마 마음공부 학생입니다. 재주는 없지만 배우고 싶은 마음은 순수합니다. 여러 도반님들과 선생님께서 모쪼록 깨달음으로 이끌어 주시길 바랍니다.
어찌 우리의 삶만 파도나 거품처럼 生滅하겠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두가生滅의 과정에 있겠지요. 저는 지구도 태양도 심지어 우주까지도 生滅의 과정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잠시 生했다가 滅하는 과정에 있겠지요, 제가 알고 싶은 것은 끊임없이 生滅하는데도 남아있는 生滅의 바탕, 그 근원 말하자면 ‘진리’ ‘깨달음’ ‘이 자리’ ‘참나’ ‘자성’ ‘본성’ ‘진여’ ‘법’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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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지도무난님의 댓글
생멸의 바탕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생멸 아닐까요 , 참 ..아리송 하지요 ㅎㅎ
윤기붕님의 댓글
달밤님 덕분에 게시판이 참 넉넉합니다.^^
맞습니다. 파도 모양이었든 모양이 사라졌든 모두가 바다, 즉 이 자리이지요.
이 자리는 알고 모름, 있고 없음, 옳고 그름 등이 모두 하나여서,
알고 모름도 없고, 있고 없음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습니다.
정진중 님의 댓글
진리 깨달음이란 제가 보기엔 망상이 없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참나란 실체란 전혀없으며 참나라고 실체를 인정해버리면 다시 망상 분별에 빠지게 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