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
2월 4일 법회 후 토론에 대한 본인의 생각
작성자 : 달밤추천수 : 0조회수 : 3,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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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 법을 모릅니다. 깨달음도 법회에 나가 법문을 듣는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2월 4일 선생님과 이상님의 토론에 대해서 저의 생각을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으니 잘못된 점이 있더라도 널리 양해바랍니다.
그날 이상님은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삶은 사는 것이 아니고 살아지는 것이다라고 하시는데 이 말씀은 또 다른 집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즉 ‘삶은 살아지는 것’이란 것에 집착하게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기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여러 가지 말씀을 했습니다만 생략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가 말씀 드릴려는 것은 선생님 설명이 아니라 이상님의 질문에 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답변은 중생을 이끄는데 쓰이는 방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생각도 선생님의 설법은, 비유하자면 달을 가르키고 계신다는 사실을 도반들은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상님의 지적은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에 대한 질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달을 가르키는데 엄지손가락으로 가르킬 수 있고 검지손가락으로 가르킬 수 있고 중지로 가르킬 수 있고 약지로 가르킬 수 있고 새끼손가락으로 가르킬 수 있고 왼손으로 가르킬 수 있고 오른손으로 가르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도반들은 가르키는 선생님의 손이 아니라 달을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상님의 질문은 선생님의 손가락에 대한 질문이어서 전형적인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모양에 시비하는’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누가 말했는지 잘 모르지만 강을 건너고 나면 방편이었던 지팡이 혹은 뗏목을 버리고 더 이상 집착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르키는 손가락이 움직인다느니, 손에 때가 많다느니 하는 등의 시비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설명이 어떠하던 즉 어느 손가락을 사용하던 우리들은 달을 보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선생님께서 삶은 사는 것이 아니고 살아지는 것이다라고 하시는데 이 말씀은 또 다른 집착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라는 질문은 방편인 손가락에 대한 시비라고 보아집니다. 저의 견해는 그렇게 느껴지는데 만약 저의 생각과 다는 뜻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박지극 |
댓글목록
이 상님의 댓글
제실수 맞습니다
크게보면 박지극님의 지적이 맞으십니다
제질문이 아마 황당했을수도 있다고~ 압니다
이사무애는 티끌하나도(부처가 깨달았다도ᆞ) 얻질수가 없는것입니다
이사무애로 보면 맞는질문이기도하며 사사무애를 몰라서 한 질문 이었다고 선생님과는 별문제 없다고 그렇게 그렇게 소통 되었습니당^^
어제의 그 질의문답 덕에 다시는 이사와 사사를 헤깔리지 않게 된것 같습니다 좋게 좀 봐 주십시용~^^ 실수가 그대로 약이 되었습니다
잠시나마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ㅠㅠ
도반여러분 명절연휴 자~ 알보내십시용^
청정심님의 댓글
이상님도 설 잘보내시구요...복많이 받으시구요.... 근디 이사, 사사 가 뭔가요? ..^^
달밤 님의 댓글
실수도 아니고 물의도 아닙니다. 다만 서로 생각의 차가 만든 일일 뿐이겠지요. 답변 감사합니다.
이 상님의 댓글
청정심 이사무애법계 사사무애법계
이 우주는 온통 하나도 아닌 하나~
따로있는듯 하면서도 따로있지않고 따로 있지 않으면서도 엄연히 낱낱이 차별됩니다
하나이면서도 서로 각각의 개별성을 띠고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도 또한 둘도 아닌 하나 ~
서로 떨어져있지만 떨어져있다고 말할수 없는 하나 ᆞᆞ 이것이 사사무애법계 ᆞᆞ지금은 이렇게까지만 이해하고 있습니당
청정심 님의 댓글
이 상 그렇군요! 크기로 치면 무한대이며, 티끌속에도 있는데...서로 영향을 미치면서도 둘이 아닌 하나~~
그런 굉장한 뜻이... 음.. 잘 알았네염...지금에 내군여.. 감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