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마의장

야단법석

진실이란 이름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459

14-05-08 08:55

본문

 

 

그대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실이란 이름의 편을 드는가?
아니면 정말로 진실하기 위해 진실하려는가?

우리는 삶 속에서 늘 진실이란 실재적 현실과,

한편으로는 세간의 엮임 속에서 
세간의 흐름에 반해서 자신만의 진실을 이야기하면
자신이 살아온 많은 세월 동안 노력해서 마련한
지금의 자리를 잃어버릴까하는 두려움에서
차마 자신의 주장을 제대로 말 못하는 비겁함과,
더불어

세간이란 또 다른 면에서 ,
세간의 흐름에 반해 진실이란 이름을 빌은 말들을 공유하지 않고 침묵하면,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세간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거나 혹시 손가락질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돌아불 틈도 없이, 진실성이란 이름에 편성하여,
우리는 늘, 어쩔 수 없이
어느 한 쪽, 특히 주장이 거센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무장된 거짓을 만난다.

그것에 길들여지면 우리는 자신의 진실에서 세상을 보기보다는
자신의 진실을 100%표현하지 못하고
대중 속에 파묻혀 자신의 참 진실은 어디가고 자신의 진실과 비슷한 무늬를 띤 
대중적 진실이란 이름의 무기를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나마 발견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나는 여태까지
내가 만나본 진실한 자는 어느 쪽을 편들지 않았다.
즉, 그냥 할 뿐이고 안 되면 안타까워할 뿐이지
세상을 원망하거나 자신은 처지를 이해해 줄 어떤 편을 만들지 않았다.
그들의 의견은 한결 같았다.

"세상의 불행은 참으로 슬프고 안타깝다.
하지만 모든 일은 인연으로 생기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그럴 수밖에 없는 요인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지키고 보존할 능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부모 자식간에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절친한 친구간에도 늘 어긋남이 올 수 있는 상황을 우리는 비켜갈 수 없다.
심지어 자신의 혀도 가끔 스스로 깨물지 않는가?
그처럼
우리는 우리의 바람이나 생각만큼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일들이 홀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엮여서 일어나는데 누구를 욕할 것인가?
거기서 크고 작음을 따지는 것은 오십보 백보를 따지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이다."

라고 말이다.
그러면서도
진실한 자는 남이 뭐라든 자신의 일을 한다.

하지만
진실보다 자신이 더 중요한 자는 
진실에 편성된 자신의 감정을 진실이라는 이름을 빌려 입에 담는다.
한번 생각해보라.
진실이라는 내용속에 오로지 진실만 들어 있는지.
분노와 보상심리와 화풀이는 들어 있지 않은지?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미 지난 일을 아무리 성토하고 따져도 돌이킬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성토하는 것은 같은 잘못을 재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성토하는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앞에서 말한
자신의 감정이 들어가 있다.
진실을 가장한 자신의 분노, 보상심리, 그리고 소외될까 두려운 대중심리...
등이 있다.
진실한 마음이 없다곤 하지 않았다.
얼마만큼 진실한가 하는 말이다.

세상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규범도 만들고 법도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 있다.

외부의 조건만 바꾸면 좋은 세상이 오는 줄 안다.
각자의 마음에 진실과 거짓의 혼들림을 바로 잡지 않은 채 말이다.

예수는 말했다.

"죄 없는 자 돌로 쳐라."

그리고 모든 사람이 물러가자 예수는 그 여인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당신을 처벌하지 않으니 나 역시 그럴 것이오. 다시는 죄짓지 마시오."

예수의 말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다.
죄는 따지되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세상이란 인연에 노출된 연약한 존재임을 정확히 알고
그런 우리,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한다.

나는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실수와 잘못을 저질러 왔다.
그래서 예수의 말처럼 
나는 감히 돌을 들 수가 없다.

 

 

댓글목록

우페카 님의 댓글




세상에는 완벽하게 죄없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세상의 누구도 죄를 벌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없다.
쉬 수긍이 가질 않습니다.
신심명은 분별심이 모든 고의 근원이라 가르칩니다.
개인의 고를 떨치기에는 적절한 가르침이 겠으나
결국 그러한 잘 잘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해서 생기는 중생들의 고는 어찌 해야 하는지요.

윤기붕님의 댓글




세간살이는 꿈속의 삶입니다.
꿈에서 깨어나 진실을 알면 일체가 하나의 일입니다.
우리 몸도 각 부분의 입장에서 보면 각각의 역할과 쓰임이 있어 서로 다른 것 같지만 몸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하나요.
각각의 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간의 꿈으로 보면 모두가 각각이지만
진리에서 보면 모두가 하나요 서로 뗄 수 없는 인연고리로 엮여 있습니다.
나비의 효과는 그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저의 답이 뭐 중요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님께서 꿈을 깨는 것이 중요하지요.

대덕성님의 댓글




꿈을 깬다헌들, 또다시 꿈속이니 어찌 할까요

윤기붕님의 댓글




우리가 꿈을 깬다는 것은 꿈속에서 다시 꾸는 꿈에서 깬다는 것입니다.
세간 살이 자체가 꿈속의 일이지만 그것이 꿈인줄 확연히 알면
여태껏 좋다 나쁘다 하던 일이 모두 잠꼬대였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지금의 삶의 어떤 것에도 매여 분별망상에 끌려다니지 않겠지요.
그것이 꿈에서 살되 꿈인 줄 알고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 꿈인 줄 알아도 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지
모든 것이 꿈인 줄 알고 분별망상이 쉬면 몸은 비록 사바세계에 있으나 마음은 늘 여여하니 꿈에서 깬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해탈옹님의 댓글




오랜만에 윤선생님의 글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아주 반갑습니다. 오늘 카페에 처음 가입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