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단법석
삶 속에서 후회되는 기억들 중에서...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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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기 하루 전 매우 위독하실 때의 일이었다.
그해 1월은 유난히 눈이 많고 추웠었다.
어머니께서는 형님 집에 계셨고, 형님 집은 좁았다.
그리고 형제들과 사촌 형제들, 그리고 그 가솔들까지 형님집에 몰려 있었고,
모두가 어머니의 상태를 살피느라 분주하여 다른 것을 살필 여유가 없었다.
부모들을 따라 온 아이들은 제일 큰 놈이 초등학교 4~5학년이니,
할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잠시이고,
오랜만에 만난 사촌과 육촌들의 반가움에 장난치고 노는 것에 빠졌다.
형님네, 나, 누나네, 그리고 사촌 집의 형제들의 애들까지,
각각 두명씩의 자식을 고르게 기르고 있었으니 그 수가 열명이었다.
애들이 많으니 노는 아이는 얼마나 재미가 있고, 어른 들은 또 오죽 시끄러웠겠는가?
아이들은 시끄럽게 떠들고 뛰어 다니다가
어머니를 걱정하는 어른들의 마음을 건드려 호통을 맞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살필 여유가 없고,
애들은 할머니의 상태가 걱정이 되어도 반가운 사촌들과 노는 재미를 참고 밀어낼 수가 없었다.
결국 어른들은 애들을 따로 떼어 놓기로 하였다.
그때 나와 형님의 집은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였기 때문에 형님네, 누나네, 그리고 내 아이들을 내 집에 모아두기로 하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한 후
내가 먼저 방에 들어가 형님 집으로 가기 전에 필요한 물건들을 찾고 있었는데
뒤따라온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왔고,
내 아들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는 애들 엄마와 이혼한지 몇 년이 지났을 때였고, 애들은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동안 애들을 잘 만나지 못하다가(그 이유까지 적으려면 너무 길어서...)몇 년 만에 아이들을 만났으니,
아들은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났다는 것이 자체가 눈물이 앞섰던가 보다.
그런데 조카들이 바로 뒤 따라 방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아들의 눈물을 보고 놀렸다.
그 놀림은 보통 우리나라에서 남자가 함부로 눈물을 보이는 것은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상한 속설에 길들여진 것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10대 청소년들에게는 우리가 볼 때에 아무 것도 아닌 그러한 것들도 그들에게는 장난거리가 될 수도 있었다.
안 그래도 아들에 대한 아빠의 기대에 눌려서 늘 아빠 앞에서 다소곳하던 어린 아들은
아버지가 반가운 마음보다 그들의 놀림을 아버지 앞에서 당하는 것이 더 부끄럽고 쑥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아들을 보고 나는 조카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얘들아, 추운 날씨에 갑자기 따뜻한 곳으로 들어오면 눈물이 날 수도 있어.”
아직 어린 나이라 순진하여서 그런지
그 말에 조카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히려 아들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가져갈 물건을 찾아서 챙기고는 아이들에게 집에서 있을 때에 조심할 것들을 일러주고,
무슨 일이 있으면 형님 집으로 전화를 하라고 일러두고 현관문을 나설 때에,
갑자기 아들이 내게 달려와 뽀뽀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보통 아버지들이 그렇듯이 첫 아들에게 거는 기대 때문에 아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아니 나는 아들을 사랑하고 좋아하는데 아들은 그렇지 않았었다.
그 아이에겐 보통의 아이들이 자신에게 기대가 큰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반대로 사랑을 원하는 마음 등이 있었다.
그러면서 아들은 내가 자신을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아버지가,
그것도 사촌형제들이 자신을 놀리는데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아버지가 너무도 고맙고 기뻤고 뿌듯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릴 때에 하던 뽀뽀를 내게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때에 나는 아직도 아들을 생각하면 후회되는 행동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마침 그때에 집에서 놀던 조카들도 아들이 내게 달려와 뽀뽀를 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나는 아들에게
“왜 이래? 남자답지 못하게?”
..............................
집을 나와서 바로 그 일이 마음에 걸려 후회를 했었다.
더욱이 세월이 흐른 후에 남자도 울 수가 있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라는 이 도리를 알 고 난 뒤엔,
그 당시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나의 젊은 나이와 함께
아직 유교관념이 짙게 남아있던 시절에 자란
우리 나이 때의 남자들이 어린 시절에 받고 겪었던 이런 저런 것들이
세포 곳곳에 녹아 나도 모르게 숨어 있는 습관과 관념들이 순간적으로 삐져나와
사랑하는 내 아들에게,
아빠의 사랑을 느끼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또 아버지에게 아들이고 싶어 하는 그 아들에게,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그 감정은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못한 채
그 여리고 이쁜 마음을 모질게 밀쳐내었던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그 일이 떠오르면 지금 이글을 쓰는 것과 같이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하다.
아들과 헤어진 것은 인연이어서 나만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미안함이 덜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은 나의 의지로 될 수 있었다고 속삭이는 생각의 꼬드김 때문에 그 기억은 지금도 가끔 마음이 아프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를 고통까지 빠뜨리진 않지만,
아들을 생각하면 늘 그 생각이 떠올라 미안하다.
그래서 인생은 돌이킬 수도 가정으로 이야기 할 수 없어 아주 우스운 이야기지만,
만약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가 있다면
조용히 현관문 바깥으로 데리고 나와 아들을 꼭 안아주고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손을 잡고 얼굴을 보며 꼭 이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다.
“아들아, 남자가 우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야.
남자는 함부로 울면 안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이 뭐 대단한 사람이 되는 줄 알고 바보같이 지어낸 이야기야.
하지만 그 사람들처럼 바보같이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보다,
울고 싶을 때에 울 수 있는 네가 더 자랑스러워.
언제든지 울고 싶으면 울렴.
남들이 뭐라 하든...
사랑한다. 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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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tuk tuk 님의 댓글
너무나 슬픈 글입니다.
저도 아들이 하나 있는데, 만약 제가 그랬대도 평생의 가슴에 남았을 것 같네요.
그러나 그때 그럴 수 밖에 없는 인연이었음은 선생님도 잘 아시겠지요.
그리고 그 때 아들분이 받았던 그 아픔과 상처는 평생에 걸쳐 그 아들분이 성장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고 있겠지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큰 힘이 저희들을 최고의 방향으로 이끌고 있음을 반드시 믿어야 하듯이요.
아는체 하는 게 아닌 것 아시죠? 그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 같잖은 위로 아닌 위로 드려봤어요^^
윤기붕님의 댓글
고맙습니다.^^
십여년 전에 아들놈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일을 이야기하며 미안했다고 하니 그녀석은 기억에 없다고 하더군요.^^
그저 제 혼자 안쓰럽게 가끔 생각나는 일인가 봅니다.
이미 지난 일이라
고통스럽거나 하지는 않은데 가끔 생각이 올라오고
자식을 기르는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한 두개씩 가슴에 품고 있을 이야기라 생각난대로 적어본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게시판은 그냥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곳인데 너무 조용하니 얘기삼아 올린 것입니다.
또 자식에 대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기도 하구요.
아는 체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식 기르는 부모로서 공감하시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tuk tuk 님의 댓글
후일담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궁금했는데^^
저도 약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너무 순수하고 저를 잘 따른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제가 라면을 끓여 먹고는(어머니 없이 거의 처음으로 혼자서) 면은 완전히 다 먹고 남은 국물만
동생에게 50원에 팔았습니다.
그 순진한 얘에게 갖은 감언이설로 꼬드겨, 결국 고민하던 동생에게 50원을(그에게는 큰 돈이었지요)
받아 냈지요.
커서도 그 사건은 생각만 나면 제게 미안함과 슬픔을 가져다 줬습니다.
이상하게도 이후 동생에게 비싼 한우도 여러번 사주고 했는데도, 그 순수한 어린동생에 대한 미안함은 계속 마음에 남더군요. 추운날 조심하십시오.
윤기붕님의 댓글
ㅎㅎ 그렇지요?
아마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님의 순수한 마음 때문일겁니다.*^^*
나그네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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