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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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無記)에 빠짐 1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320

15-12-07 12:40

본문

무기(無記)에 빠짐 1

 

무기(無記)의 원래 의미는

주로 불교에서 쓰이는 말이면서 불교에서 쓰는 용어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쓰는 사람이나 때에 따라 여러 면으로 쓰이기 때문에 혼선이 많다. 원래 무기라는 말이 쓰인 것은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 물음에 대해서 수행에 아무른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쓸데없는 시간만 낭비한다고 해서,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질문에는 침묵으로 대한 것을 무기라고 하면서 쓰기 시작했는데, 그 후 여러 가지의 각도에서 쓰이기도 했다. 그 중에 많이 쓰는 의미는 철학적인 용어로 ‘차별(差別)을 두지 않는다는 뜻으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성질을 이르는 말’로 쓰이는데, 나쁜 일을 하면 나쁜 과보를 받고, 좋은 일을 하면 좋은 과보를 받는데 무기는 이러한 선악의 과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소행을 말한다.

그래서 좋은 의미로 쓸 때에는, 사람들의 소박하고 큰 집착 없고 또 집착을 부릴만한 요소가 별로 없는 욕심은 욕심이라 하지 않고 업과 크게 관계없는 뜻으로 쓰며 부처님께서도 당시에 그러한 것을 허락하셨고,

나쁜 의미로 쓸 때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수행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쓸데없는 공력만 낭비하는 것과 또 하나는, 화두 참선 중에 화두를 놓치고 ‘멍’함에 빠진 상태를 말하는데, 이것을 무기공(無記空)이라고도 하는데, 이런 무기공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상태에 들어간 것이어서 깨어나면 그뿐이지만,

 

정말 나쁜 것은 조사들이

‘한 생각 쉬어라.’

고 하며 무심(無心)을 말하니, 그 무심이 망상심(妄想心)이 없는 것인 줄 모르고 생각 자체가 없는 것으로 알아듣고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빈 마음으로 앉아 있는 무기공(無記空)이다.

그래서 이런 무기공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아주 경계를 하는 것이다.

 

오늘 말하고자 하는 무기는 바로 이렇게 수행에 아무런 이익도 없는 것을 쥐고 중요하게 여겨 쓸데없는 공력을 낭비하는 것을 말한다.

 

공부에서나 세상에서 사람들을 번뇌에 들게 하고, 또 시비를 일으키고, 싸움을 일으키는 모든 것이 다 생각에서 일어난다.

이 한 법은 본래 텅 비어 있고, 또 우주 삼라만상은 연기법에 의해 끊임없이 일어나고 변하고 사라지기 때문에 잠시도 머물지 않고, 또 머물지 않을 뿐 아니라, 앞의 것이 가면 끊임없이 뒤의 것이 생겨나 일체 만법이 끝없이 이어진다.

 

그처럼 우리도 이 한 법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의 마음도, 허공과 같이 텅 비어 있다.

그 빈 마음위에 연기법에 의해 온갖 생각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진다.

그리고 연기법에 의해서 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인연이 되기만 하면 생각이 일어난다. 그래서 좋은 생각도 있지만, 나쁜 생각, 끔찍한 생각, 어리석은 생각, 미워하는 생각, 집착하는 생각 등 일어나지 않는 생각이 없다.

 

이는 마치 우주 삼라만상이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따뜻한 봄날이 있는가 하면,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혹독한 겨울바람도 있고, 지진도 나고, 태풍도 불고, 홍수도 난다.

 

늘 말하지만, 이 우주는 인간 중심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생각 역시 우리가 눈을 감고 있어도 귀에 들리는 소리가 있고, 귀를 막고 있어도 코는 냄새를 맞고, 입과 코와 귀, 눈을 다 막아도, 우리의 온 몸은 촉감으로 우리에게 바깥의 정보를 끊임없이 전해준다. 우리는 그것을 막거나 피할 방법이 없다.

 

그리고 뇌는 우리의 생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가지고 꾸준히 생각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하고 싶지 않는 생각일지라도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 바로 생각이다.

 

우주에 일어나는 일을 막을 수 없듯이, 우리의 생각 역시 막을 수가 없다.

 

즉,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사무치게 알고, 내가 법임을 분명하게 알면, 모든 조사와 선지식들이 왜 인연 따라 살라고 했는지, 무심을 말했는지, 무위를 말하고, 수많은 부처에게 공양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무심도인에게 공양하는 것이 났다고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조 스님의 말처럼 한 번 깨달으면 영원히 깨달아 영원히 미혹해지지 않는다고 한 것처럼,

이 도리를 분명하게 알면, 모든 유위와 조작을 쉬고 집착과 망상에서 벗어나

영원히 편히 쉴 수가 있다.

이것이 바로 해탈이요, 열반이다.

 

여기서 해탈과 열반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생각을 없앴는가? 아니다. 생각과 세상에 내가 할 것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을 뿐이다.

그리고 나아가 내가 바로 이 우주 삼라만상의 주인인 법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뿐이다.

그리고 일체를 인연에 맡기는 무위의 삶을 사는 것밖에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여기서 주인이라는 말에 혹하여 세상을 내 욕심대로 하려는 생각이 일면, 바로 유위에 물들고 마구니 손에 끌려서 번뇌와 고통의 지옥불로 떨어질 것이다.

일체의 주인이면 일체를 어떻게 하겠는가? 모두가 다 나인데, 거기에 무엇이 더 귀중하다고 욕심을 부릴 것이 있겠는가?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일체가 모두 나의 일이요, 연기법이라는 하인이 세상을 잘 돌아가게 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지켜볼 뿐 특별하게 여길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즉 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이것을 알면 무기에 빠지지 않는다.

즉, 일어나는 생각을 어떻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인연으로 일어나고, 또 내가 간섭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저절로 물러가는 것이 생각인데, 거기에 쓸데없이 마음을 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쓸데없는 마음을 쓰지 않으니 그 삶이 얼마나 편하겠는가?

그러니 영원히 편해진다고 하는 것이다.

 

앞에서

‘공부에서나 세상에서 사람들을 번뇌에 들게 하고, 또 시비를 일으키고, 싸움을 일으키는 모든 것이 다 생각에서 일어난다.’

고 했다.

 

대상경계는 절대로 우리를 시비하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그저 인연 따라 그렇게 그곳이 있다가 인연이 다하면 사라질 뿐이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이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잣대를 가지고 대상경계를 보고는 괜히 시비를 해서 마치 대상경계가 우리를 괴롭힌다고 착각을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생각에 대한 시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생각도 앞에서 말했듯이 아무리 막아도 막을 수 없는 감각기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아무리 멈추려고 해도 멈출 수 없는 뇌와 신경세포의 작용으로 끊임없이 인연이 되면, 우리의 생각과 상관없이 만들어낸다.

 

거기에 또 공연히 잣대를 갖다 대어 옳으니 그르니 하고 시비를 하고 스스로 고통에 빠져든다.

 

앞에서 사람이 번뇌와 고통에 빠지는 원인이 제법의 실상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의 잣대로 세상을 보니 늘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바로 이러한 것이다.

되지도 않고 하지도 못할 일에 욕심을 내고 어떻게 하려니 그 번뇌가 어찌 잠잘 날이 있겠는가?

 

그것이 바로 쓸데없는 짓, 무기(無記)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무기가 있다.

육조스님께서 단경(壇經) 정혜(定慧)편에서 말씀하시길

“스스로 깨닫고 수행하는 것은 입으로 논쟁(諍)하는데 있지 않으니, 만약 선후를 다툰다면 이는 곧 미혹한 사람으로 이기고 지는 것을 끊지 못하니, 법상과 아상이 일어나 네 가지 상(四相)을 여의지 못한다.”

고 하셨다.

사람들 중에 간혹 법을 마치 논쟁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야 말로 망상중의 망상이요, 무기 중의 무기이다.

우주의 진리가 인간들의 입으로 생각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 이것이 법이다 한다고 그것이 어찌 법이 되겠는가?

이렇게 말해도,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자는 이 말에 또 의심이나 반론을 내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육조스님의 경고는 바로 이런 사람에게 하는 것이다.

 

법은 대상이 아니다.

아무리 논하고 설명한 들, 그것은 설명일 뿐 도도 아니고 법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백장스님은 그것을 일러 희론(戱論 : 쓸데없는 말)이라고 했다.

 

선지식들과 조사들이 왜 이름 따라 가지 말고 생각으로 헤아리지 말라고 했는가?

자신의 머릿속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인데, 바깥으로 다른 이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무기에 빠지지 마라.

무기에 빠지지 않은 삶이 바로 깨달은 삶이다.

 

 

댓글목록

태정이할배 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

윤기붕님의 댓글


세월 가는 것이 무슨 큰 의미겠냐만, 그래도 다 묵자고 하는 일인데, 송년회 함 합시다.^^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윤기붕 넵^^

무량태선님의 댓글


_()_

윤기붕님의 댓글


오랜만에 글을 남기셨네요?
얼마 전에 봤지만, 그래도 잘 있지요?

무량태선님의 댓글


윤기붕 네~~^^

idlesky 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감기 조심해라.

dlesky님의 댓글


윤기붕 네 기관지가 약한 편이어서 조심해요 ^^

청정심님의 댓글


연기법은 본체의 작용이며
결국,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