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CSI 시즌 1 라스베이가스 9편을 한번 보시길...(생각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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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참 좋은 교재인 것 같아요, 특히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좋은 교재인 것 같아요. 게다가, 덤으로 재미도 있지요. 드라마거든요. 물론 티비를 좋아하지 않거나, 자주 보더라도 드라마, 특히 미드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별 의미가 없겠지만요.... 사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이 말도, 이 드라마를 자세히 끝까지 보면 왜 이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아! 조건이 하나 있는데 이것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관념을 버리고, 그냥 보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자기의 가치가 일어나더라도 잠시만이라도 멈추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 조건입니다. 그리고 극중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지요. 자신의 생각이 중요한 사람은 그게 좀 어렵겠네요.
하지만 진정으로 법을 구하시는 마음이 있는 분에게는 어찌 보면 공정한 마음을 낼 수 있는 교재로도 충분하겠지요.^^ 사실 드라마가 있는 그대로 보이는 분들에겐 제 이 말이 쓸데없는 기우일겁니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단순한(?) 세상이 아닙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에게는 세상이 단순하다고 말하는 이 말이 정말로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그냥 받아들여버리면 세상은 정말 정말로 단순합니다. 실제로도 정말로 단순합니다. 왜냐하면, 이 한 법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70억 인구가 모두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 70억 개가 다 옳다고 하면서 세상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세상이 바라는데 그 생각이 자기가 바라는 대로 안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우리들에게는 정말로 복잡하지요.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닌 70억 개로 복잡하지요.
물론 세상엔 좋은 사람도 많지요. 그런데, 그런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생각을 양보하면 세상이 다툼 없이 안전할거라는 생각으로 양보를 하지요. 그래서 그들의 생각 꼬투리에 안전이라는 것이 붙지요. 그리고 안전이라는 생각이, 사실은 또 다른 반대의 생각을 만들어 내다보니 세상은 안전이라는 상대적인 생각으로 바라보기엔, 정말로 별로 안전하지 않지요. 그래서 좋은 사람으로는 감당이 안 되지요. 좀 힘들죠?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옳다고 하는 것이 다르듯이 안전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하여튼 뭔가 세우면 늘 반대가 생깁니다. 그러니 세상은 여전히 70억 개의 세상이 함께 살아갑니다.
그렇게 부딪히지 않으면 평화, 부딪히면 사단....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간의 사소한 의견충돌과 다툼부터 세계대전까지 말입니다. 그래서 세상엔 작고 크든,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쩌면 동물보다도 더 못한 존재일지 모릅니다.
^^ 이런 말은 좀 과격한데 일부러 하는 이유는 동물은 인간처럼 생각으로 반대의견을 교묘하게 끌어내어 막가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개들 세계나, 아니면 소나무 세계면 다른 말을 하겠지요? 이 우주는 단 한 번도 나눠진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는 모르지만, 성경에는 창세기에 선악과의 이야기로 설명하네요.
우리가 거부할 수 없이 인간에게 생각이란 것이 나라는 하나의 육체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이 우주가 하나라는 사실보다도, 생각이 지켜야할 하나의 육체가 더 중요시된 것이지요.
그리고 사실 이 생각은 태생이 하드웨어인 육체가 사라지지 않도록 프로그램된 것이어서 오직 한 법, 그리고 일체가 한 법이라는, 이런 이야기는, 생각이 생각할 때에 몸이 잘나갈 때에는 괜찮은 말로 여겨지고 합당한 이야기처럼 여겨져, 나름대로 지켜야할 중요한 말이 되지만,
생각의 고향인 몸이 조금만 이상해지면, 생각은 단번에 자신의 삶을 찾아 안면을 바꿉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전체적인 세상을 알지 못하지만, 나름대로 경험을 통해 이해를 넓혀서 좋은 생각을 만들어서 그런 과격함이 좋지 않고, 또 살아보니, 그렇게 몸을 주인으로 모시는 생각이 자신만이 아니라는 것을 만나다보니, 굳이 과격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서로 좋은 쪽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지요. 하지만 그것은 법의 실상을 안 것이 아니라, 세간의 상대적인 면에서 조금 부드러운 쪽에 선 것이지, 전체적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한 법의 진정한 법은, 그들에게는 사람들이 말하는 교과서의 이야기요 좋은 이야기일 뿐, 정작 생각이 기생하는 몸에 문제라도 생길 것 같으면 세상이 어떻게 되건 말건, 생각이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양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범죄입니다.
물론 세간에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등등의 각각의 레벨이 있으니, 생각은 다양한 일들이 생겨나는 세계에서 자신과 무관한 일에는 어떻게? 하는 물음이 있을지 모르지만, 정말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자라고 할지라도, 정작 자신의 상황과 긴박하게 연결되거나 유사한 일에는 어떻게 라는 말을 붙이지 않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똑똑해도 자신의 이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 즉 상대법적인 이분법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법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실상의 세계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그리고 달마가, 그리고 혜가가 죽은 이유도 그러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찌 그들을 나무라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예수를 이해하고, 달마를 이해하고 혜가를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그것을 아는 예수는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오히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알아도 누가 물을 때만 안다고 하지, 스스로는 안다고 하지 않지요. 세상이 원래 그런데 무엇을 안다고 하겠습니까? 다만 모르는 사람이 물으니 안다고 하는 것일 뿐이지요.
숭산스님이 그랬다지요?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뿐.”
드라마의 마지막에 ‘길 그리썸 반장이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자세히 보고, 대화를 해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아냈다면 그럴 일은 없었을거야. 죽이는 데는 다섯 사람이 필요했지만, 구하는 데는 한 사람이면 충분했어.”
진실을 아는 차분함이 욕심에 찬 두려움으로 생긴 용기보다 얼마나 중요하고 생명력이 강한지 말해주는 장면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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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화요일에 바쁘셨던 모양입니다.
우리끼리 재밌게 놀아서 좀 미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