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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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아무 일이 없다 2.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908

16-03-24 12:41

본문

 

본래 아무 일이 없다 2

 

이 법(法)을 깨달으면 사실은 이 법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매 순간 삶을 바라보는 그 왜곡(歪曲)된 시각(視角)이 참으로 특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일체가 한 법인 이 우주(宇宙)에서 세상 만법(萬法)은 어느 누구도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연기법(緣起法)에 의해서, 손가락 꿈틀거리는 것조차도 인연(因緣)으로 일어날 뿐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그런 삶을 바라고 또 원해도 그 삶이 지금의 삶을 대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人生)은 절대로 가정(假定)이 없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닥친 삶에는 지금의 삶밖에 없지, 우리가 바라는 그런 삶은 어디에도 없고 우리의 생각 속에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시간을 두고 노력하면 그런 삶을 얻을 수는 있지만, 지금 당장에는 아무리 바라도 오지 않고,또 지금의 삶을 탈출하고 싶어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이 한 법으로 드러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이 한 법의 법칙(法則)을 벗어나면 우리는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어, 바라는 것 자체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는 삶은 결국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생각에만 존재하는 정말로 허망(虛妄)한 관념(觀念)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바람을 내는 것조차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허깨비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삶을 길게 보고 노력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매 순간 실제로 맞닥뜨린 삶에서는 찰나(刹那)라도 시간이 흐르지 않으면 절대로 도망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흐르더라도 인연이 되어야 그런 삶이 찾아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인생은 가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 생각은 자신의 바람이 너무 강해서 지금의 삶보다는 생각이 지은 삶이 제대로 된 옳은 삶이라고 강하게 믿는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그냥 불편하고 싫은 삶이 아니라,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라는 가치적(價値的)무게까지 얹어져 내 삶에서 없애야 할 삶이 되어 이러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삶이 죽도록 싫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 삶을 살아낼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이 한 법으로 드러났고 이 한 법의 연기법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주의 티끌부터 거대한 은하계와 나아가 우주 전체까지 어떤 무엇도 어떤 누구도 어떤 존재도 이 사실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것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바라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는 그 생각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지금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진정으로 받아들여버리면 정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끙끙거렸음을 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럴 때에 우리는 육체(肉滯)에 갇힌 존재가 아니라, 이 우주를 만든 한 법 자체(自體)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사람은 이 말이 믿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분란(紛亂)은 삶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삶을 거부하는 생각이 만들고 있는데 그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그 생각이, 지금의 삶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삶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 생각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그런 생각으로 어찌 받아들이라는 말이 믿기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생각의 오류(誤謬)를 보기 보다는 그 생각에 의지하고 따라다니며 오히려 선전관이 되어 다닌다. 그러니 어찌 번뇌(煩惱)가 사라질 날이 있겠는가?

그래서 선지식(善知識)들이 생각으로 헤아리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삶을 길게 보고 노력해서 얻은 삶도 실제로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세상에는 머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시 얻을 때뿐이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다른 삶으로 변해버린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세상은 홀로 사는 것도 아니고, 일체(一切)가 평등(平等)하여 특별(特別)한 존재(存在)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 모든 것이 인연(因緣)으로 얽혀 존재(存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에 우리 앞에 벌어지는 삶, 우주 삼라만상은 모두가 연기법(緣起法)으로 일어나고,우리는 우주에 사는 이상 어느 누구도 이 삶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 어떤 누구도 자신이 바라는 삶만 살 수도 없고 지금 당장에 우리 앞에 벌어지는 삶에서 인위적(人爲的)으로 떠나갈 수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생각은 너무나 고집스러워 그것을 받아들이기는커녕, 행복(幸福), 사랑(愛), 진리(眞理), 진실(眞實), 잘 사는 삶, 옳은 세상 등이 자신에게 와야 제대로 된 세상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것도 순전히 자신만의 생각으로 지은 그런 세상....

 

그런데 세상이 과연 그럴까?

 

이 세상에서 평생을 행복, 사랑, 진리, 진실, 잘 사는 삶, 옳은 세상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지 않고 산 사람이 있을까?

왕후장상(王侯將相)이나 재벌(財閥)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

왕후장상들과 재벌은 보통사람들보다는 권력이나 재물을 좀 더 가지고 살 뿐,

 

그래서 세상에 그 어떤 사람이라도, 어릴 때 넘어지고 깨지고 벗겨지면서 자라고, 청소년기에 한두 번 반항해보지 않은 사람 없고, 성년(成年)이 되어 남녀 간에 다툼이나 실연(失戀) 등의 아픔을 겪지 않은 사람이 없고, 취업(就業)과 관련하여 고통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고, 한두 번 병원에 가지 않은 사람이 없고, 부부간에 심각한 일을 겪지 않은 사람도 없고, 자식의 문제로 힘들어 하지 않은 사람 역시 없고, 주위에 사랑하는 사람을 한번쯤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결국 세상을 떠난다.

이런 삶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權力)이 세상을 덮을 지라도 금(金)으로 밥을 대신할 수 없고, 권력(勸力)으로 잠을 대신할 수 없다. 인간이기에 느끼는 차별은, 오히려 인간이기 때문에 아무리 신분(身分)의 차이가 있더라도 누구나 같은 종류의 행복과 불행을 느끼고, 또 고통과 번뇌도 인연이 되지 않으면 자기 마음대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일들 중, 사람들에게 닥쳐온 행복과 불행 중 크고 고통스러운 것들은 사람마다 종류가 달라서 어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고, 육체적인 힘듦, 경제적인, 또는 자식, 부부 등등으로 남보다 특히 더 많은 고통을 받는 부분이 있을 뿐, 삶에서 불행과 행복이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모든 이가 다 마찬가지이다.

 

법을 깨닫는 것은,

평생을 노력해도 비교된 눈으로 바라보는 한, 우리의 삶은 그저 순간순간 왔다가 사라지는 그런 행복(幸福), 사랑(愛), 진리(眞理), 진실(眞實), 잘 사는 삶, 옳은 세상을 얻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의 노력(勞力)과 염원(念願)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평생을 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런 세상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직 우리의 생각 속에만 있는 허망한 바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런 허구적(虛構的)인 생각의 관념에서 깨어나 지금까지 세상을 바라보던 시각을 바꾸어, 우리가 지금 누구나 늘 이렇게 살아가는 이 삶 모든 존재(存在)의 삶이요, 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에 진정한 행복(幸福)의 삶이요, 사랑의 삶이요, 진리(眞理)와 진실(眞實)의 삶이요, 잘 사는 옳은 삶이라는 것을 사무치게 통감하여 모든 생각의 헛된 구속(拘束)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지인(知人. 벗)들과 오랜만에 서로 연락을 할 때 묻는 안부가 대부분,

“별 일없지?”

라는 말을 한다. 그리고 보통은

“응 그래. 아무 일없어.”

라고 대답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밥 먹고, 자고, 직장 다니고, 또 부부간의 소소한 다툼도 하고, 자식이 늘 다투며 애를 먹여 화를 내기도 하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만큼의 일들을 한다.

그런데 대부분 아무 일도 없다고 한다.

그 이유는 누구나 그렇게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평상시 대부분 그렇게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삶은 이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깨달은 사람들이 본래 아무 일도 없다고 하는 말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다만 깨달은 사람들의 시각이 보통 사람들보다 세상을 보는 시각의 스펙트럼이 넓고 깊으며, 또 삶의 근본을 알고 삶을 있는 그대로 그 속을 들여다보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까지도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한 법(法)이 분명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뿐이다.

 

깨달음은 삶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는 것이다.

바로 본질을 제대로 보는 것이다.

 

깨달은 사람들이 행복한 것은 그들이 보통사람들과 다른 무엇을 얻거나 대단한 능력을 가져서가 아니다.

깨달은 사람들은 세상을 통째로 보고, 일체를 모두 있는 그대로 본다. 그래서 앞에서 말했던 왕후장상이나, 재벌이나 보통사람이나 거지나 노숙자나 가리지 않고 누구나 서로 모양이 다르고 삶의 규모만 다를 뿐, 삶의 내용은 거의 같은 일을 겪는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일체가 한 법이기 때문에 그러한 삶뿐만 아니라 어떤 삶이라도 우리에게 닿아 있는 것들은 모두 실제 세상임을 알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 어떤 동요(動搖)가 없고 한결같이

“본래부터 아무 일도 없다.”

고 말하는 것이다.

 

행복과 불행은 별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

다만, 본래 아무 일도 없는 삶에 자신만이 원하는 그림을 그릴 때부터 행복은 특별해지고 반대로 지금의 삶은 불행한 악몽(惡夢)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텅 비고 고요한 것은 생각 자체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가고 때론 끔찍한 생각도 오고가지만 인연의 존재인 우리에겐 생각도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한 법의 인연으로 오고가니, 어떤 생각이 일어나든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시비하지 않을 뿐이다.

그럴 때에 번화한 네거리에 사람들과 차들이 쉴 새 없이 복잡하게 오고가듯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가도, 생각은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흘러갈 뿐 나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이 텅 비고 늘 고요한 것이다.

 

본래 아무 일도 없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아무 일도 없다는 말에 미혹(迷惑)되어 정말로 아무 일도 없는 것을 바란다면, 그의 머릿속은 온갖 일로 복잡해지고 번뇌(煩惱) 속에 고통(苦痛)을 받을 것이다.

 

일체가 한 법이다. 그리고 그 한 법이 낸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섞여서 살아간다. 어찌 말만 따라가는 것처럼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겠는가?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은 삶의 그러함이 당연하다고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무 일도 없는 것이다.

 

왜?

그런 것이 바로 이 한 법으로 드러난 우주 삼라만상의 만법이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돼지새끼 소풍가듯 늘 자신을 빼먹는 책임감 없는 생각을 지닌 우리 자신도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는 어김없는 만법의 하나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런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이 과연 누구이겠는가?

그런 만법의 세계에서 나만 특별하다고 여기는 순간, 또는 특별한 삶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지옥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염병(染病) 걸린 사람이 옆에 있어도 자기 발가락의 가시가 더 아프다.”

 

사람의 삶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고통과 행복은 모두 개인의 마음에서 구현(具現)될 뿐이다.

일체가 한 법이어서 누구나 인생에서 공통되고 평등하게 겪는 삶, 그리고 끝내 개체의 마지막인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 그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삶은 문제투성이도 될 수 있고 아무 일도 없는 편안한 삶이 될 수가 있다.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 더 분명하게 말하면 삶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눈으로 삶을 바라보겠는가?

 

하지만 분명한 진리는 우리가 어떤 눈을 선택하든 실상(實相)은 본래부터 아무 일도 없다.

스스로에게 속지마라.

 

 

 

댓글목록

새앰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 )-

윤기붕님의 댓글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청정심님의 댓글


네~ 있는 그대로 이지요..어떤 시각으로 보느냐!
모두가 법인데...자연 모두가 깨달아 있는데.. 우리는 좋은 건 취하고 나쁜 건 버리고 저항하고..
맘에 안든다고 아우성 ..그리고 그 결과로 고통받고... 본래 이대로 천국인걸!.... 잘 읽었습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삶의 최고의 행복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본래 이대로 천국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Gary님의 댓글


선생님 항상 좋은 법문 감사드립니다.
15년전에 숭산 스님의 선의 나침반을 통해 '선'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리저리 헤매다가 선생님 책과 법문을 듣고 이제야 조금 눈치챌 수 있을것 같습니다.
오직모를뿐이 너의 마음이다라는 숭산스님의 말씀과 본래 아무일이 없다는 선생님의 법문의 말씀이 다를 바가 없군요.
무엇을 찾아 헤매는 마음을 쉬면 그만인것을 ...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오

윤기붕 님의 댓글


고맙습니다.
님께서도 늘 여여하십시오.^^

무석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건강하세요~

無事人님의 댓글


ㅎㅎㅎ

윤기붕님의 댓글


*^^*

idlesky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스승님

이전 회사에 다시 입사한 지 8개월 지나갑니다.
고깝지 않아 하는 것 같은 고객이나 동료, 선임, 후임의 말이 걸릴 적에, 저 자신을 변호하고 방어하곤 합니다.
이럭저럭 살아내도 전 괜찮은데 상대방이 상처받는건 아닐까 걱정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배려할 수 있을 땐 배려하고, 합일점이 없으면 그사람의 몫으로 넘겨.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거야.

idlesky님의 댓글


윤기붕 네 알곘어요.

반야지7님의 댓글


그 많은 사람들중에 선생님(선지식)과 제자로서의 만남이 인연이요.연기법이며(선생님과 만나야만될인연의 여건들) 매주 목욜 같이 수업듣는도반님들.책상.의자 마이커 .먼지.티끌. 기타등등이 만법의 나툼입니다. 일체가 법임을 *** 쌤. 감사합니다. 와인이 되어 갑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그렇습니다.^^
모두가 인연이요. 또 인연으로 만날 수 있는 것은 일체 만법이 모두 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김창석(윈드)님의 댓글


감사합니다_()_

윤기붕님의 댓글


잘 계시죠?

김창석(윈드)님의 댓글


윤기붕 네^^

윤기붕님의 댓글

김창석(윈드) 따뜻한 봄도 되었는데 얼굴 함 봐요~^^

김창석(윈드) 님의 댓글


윤기붕 그렇게 하겠습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김창석(윈드) *^^*

일천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좋은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