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생각으로 헤아리지 마라.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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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으로 헤아리지 마라.
우리의 감각기관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감지하고 뇌로 보낸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은, 우리의 생각이 인식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여러 가지 현상들까지도 감지해서 뇌로 보내지만,
우리의 생각은 과거의 정보로 새로 들어온 정보를 판단하기 때문에 기억에 없는 것은 그냥 받아들일 뿐, 생각으로 만들어낼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인 정보를 나름대로 정리를 한다. 그 정리과정에서 미세하지만, 기존의 정보를 기준으로 정리를 한다. 그리고 또 그 생각을 다시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잣대로 세운다.
즉, 뇌 속에 정보가 없는 처음 보는 것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라는 오온의 과정을 통하지만,자신이 경험한 것은 이미 기억 속에 기준처럼 모양을 지니고 있어서, 기억을 통해서 대상을 바라본다. 그것이 생각의 속성이다.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아니라, 상(想)수상행식(受想行識)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아주 엉성하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처음 보는 것이라 하더라도, 끝내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정보들을 동원하여, 다른 정보와 소통이 되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정보로 만들어서 저장을 한다.
예전에 TV에서 TV광고를 할 때에
“아는 만큼 보인다.”
는 말을 내보내어 한 동안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바로 그런 것이 생각의 한계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직접적이고 기억에 남을 경험이 달라서 세상을 보는 이해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것에 IQ와 EQ도 한몫을 한다.
아이큐는 감각기관으로 들어온 정보를 분석하고 기억 속에 있는 미세한 것까지 끄집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이큐가 좋은 사람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생각까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 우주에 존재하는 실제 정보를 모두 아는 자는 없다.
그 이유가 앞에서 말한 생각의 한계인 것이다.
물론 인간의 육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도 있다. 우리의 눈이 적외선과 자외선을 보지 못하고, 또 빛의 스펙트럼도 기구를 통해서만이 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하지만, 육체의 기능은 생각보다는 훨씬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다.
생각은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모든 복잡한 정보들을 자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개념화하여 엉성한 언어로 표현을 한다.
그 복잡한 정보들을 개념화하는 과정에서 늘 빠지지 않고 과거의 정보가 개입을 하여 교통정리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뇌 속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생각들중 미세한 것들은 대부분 개념화시키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내고 있으며, 또 아무리 새로운 것을 보고 듣는다 하더라도,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만든 모양의 필터를 통해서 이해하고 난 되에 기억 속에 저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 속의 생각을 일러 종자식(種子識) 즉, 생각의 종자가 되는 생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특히 관념적인 것들에 대한 것은 더욱 심하다
사물들은 그래도 새로운 것이라 해도,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어서 언제든 뇌 속에 있는 과거의 정보를 수정할 수 있지만,
관념화된 것은 그것을 수정해줄 대상이 관념밖에 없기 때문에 수정이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사랑이니, 행복이니 선이니 악이니 하는 그림을 그려서 그것에 목을 매지만, 사실은 자신이 그린 그림과 꼭 같은 그림을 만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게다가 그런 관념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고,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 또한 엉성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옳다고 믿을 뿐, 정말로 무엇이 맞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리고 또 그런 관념은 모두 이름일 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올바른 것으로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특히 깨달음은 더욱 그렇다.
깨달음은 이 한 법을 깨닫는 것인데,
실제로 이 한 법은 우리의 감각기관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모양도, 소리도, 냄새 등등이 없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깨달음은,
그들이 깨달음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나 그런 말에 감명을 받았을 때 느낀 그 감정으로 깨달음이라는 모양을 만들어 꼬리표를 달아 저장해 놓은 것이 유일한 깨달음의 잣대이다.
그러니 실제로 깨닫지 않는 이상은 깨달음의 상(相)은 모두가 자신의 에고의 이미지를 넘어 설 수 없기 때문에, 처음 저장해놓은 기존의 기억을 수정할 자료가 없는 것이다.
그 자료는 딱 하나, 오직 깨달음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깨달음은 생각이 작동하고 있는 이상 생각이 만든 모양에 가려서 절대로, 절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분법적인 시비분별이 있는 한은, 상대가 없는 절대적이고, 하나밖에 없는 이 한 법을 인간들은 상대적이고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생각으로는 아무리 헤아려도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으로 헤아리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서 수행이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 이 한 법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옛사람들의 말을 듣고 자기 식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깨달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또 한결같이 수행을 하지 말라고 한다.
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이 한 법으로 인해서 존재하고, 또 그 재료와 작동법이 모두 이 한 법으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더럽고 악하고 말 같지 않아도 이 한 법인 것이다.
그래서 비록 수많은 세월을 이분법적으로 살고, 또 시비분별에 물들어 악행을 해왔다고 하더라도,이 한 법을 분명하게 깨달아 자신이 둘이 아닌 하나인 존재임을 알기만 하면, 그동안 해왔던, 분리된 상태에서 완전을 꿈꾸며 온갖 관념을 지어 좋은 것을 취하고 싫은 것을 버리려는 일체의 이분법적인 생각과 행동을 멈추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하는 것은 이러한 절대적이고 오직 한 법인 우리를 스스로 중생이라는 최면 속에 들게 하여, 부처와 중생이라는 상대적인 존재로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저 생각으로 헤아리지 말고 간절하게 일체가 한 법임을 믿고 되뇌는 것만한 것이 없다. 마치 화두를 드는 것처럼...
불가에서는 염불(念佛)이라는 것이 있는데, 염불은 말 그대로 부처를 생각하는 것이다.
부처는 법당에 있는 조각상이 아니다. 그 어떤 모양도 소리도 없는 텅 비어 있지만, 만물의 근원이 부처이다.
그래서 일체가 한 법임을 믿고 되뇌는 것이 바로 염불이다.
그래서 일체가 한 법이라는 말을 염불처럼 되뇌면 시간이 갈수록 그것이 생각을 많이 멈추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한 법이기 때문에 자신이 부처라는 그런 믿음과 일체가 한 법이라는 되뇜은,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진언(眞言)도 아니고 주문(呪文)도 아니며 거짓도 아니고, 사이비도 아니다.
비록 깨닫지 못한 생각이 지금은 그 내용이 믿기지 않는다 해도, 알 수 있는 말과 내용으로 믿고 되뇌기 때문에 생각이 방향을 잡게 되고, 진실한 믿음과 진실한 뜻으로 믿고 되뇐다면 반드시 이 한 법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부디 생각으로 헤아려서 법을 알려고 하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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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무석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꼬~옥 저한테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ㅋㅋㅋ 이자리가 분명하지 않으면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無事人 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윤기붕 님의 댓글
날씨가 장난이 아니네요.
감기 조심해요.
idlesky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조나단님의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