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회개(回改)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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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예전에 올렸던 글인데, 마침 육조단경 ‘청정법신불’에 대한 강의에 회개라는 말을 하게 되어 덧붙여 설명하기 위해 다시 올립니다. ............................................................................................
회개하십시오.
거리에 나가면, "회개하라! 천국이 멀지 않으니, 너희가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의 날에 모두 지옥에 들 것이다." 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의가 기독교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나 하느님이 무한 순수하신 분이기에, 우리의 속에 있는 모든 죄를 말끔히 회개하여서 깨끗하게 하여야만 구원을 받을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가 여기서 임들께 회개하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회개라는 것은 한자로 悔改 즉, '뉘우쳐 잘못을 고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법에 있어서는 悔改가 아니라, 回改입니다. 이제까지 해왔던 것을 '돌이켜서 고친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토록 괴롭고 힘든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서, 다시는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살지 않기 위해서, 영원한 그 무엇을 찾아가던 그 걸음에 대해서 자그마한 의심이라도 일으켜서, 과연 이것이 옳은 길인가? 하고 깊이 생각해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우리는 지금의 자신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어야만 바른 내가 된다는 미래지향적인 삶을 교육받았고, 또 그런 것이 옳은 삶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에 대한 자신의 판단은 유보한 채, 너무나 오랜 습에 길들여진 그 한마음으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구하여서 바르게 되는 삶이 옳다고 살아왔습니다. 아니, 구하면 바르게 된다는 것이 진리인양 믿고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는,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참으로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제가 회개하라는 말을 하는 것은 과연, 삶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어서 고통스러운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판단하여서, 옳다 그르다 하고 시비하고는, 옳지 않은 것은 버리고, 옳은 것은 구하는 그 마음에 의해서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워진 것이 아닌가 하는, 자신의 수행의 삶을 돌이켜 생각을 해보라는 것입니다.
즉, 오랫동안 옳다고 믿어온 수행의 길, 반성의 길, 선행의 길, 깨달음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어온 길, 이것이 과연 맞는가? 하는 의문을 내어보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에 대한 의문을 내어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구하는 삶이 자신에게 진리를 갖다 주지 못한 것이면, 구하는 삶을 돌이켜서 있는 그대로 사는 삶이 옳은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을 내라고 드리는 말입니다.
거두절미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임들께서 그렇게 자신의 채찍질하며, 바른 나를 찾아온 세월이 과연 자신을 자유롭게 해줍디까?
저곳에만 가면, 꼭 그것을 얻으리라 하는 그 믿음으로, 과연 저곳에 가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 가신 분이 있으시면, 지금 제게 틀렸다고 이야기하십시오.
설사 그렇게 해서 그 곳에 가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믿음으로 간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의 극에 달하여서, 도저히 그 믿음이 자신을 구제해줄 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그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 믿음을 버린 연후에야 그곳에 간 것이 아닙니까?
자유를 얻은 자에게 묻는 말입니다. 구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자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물음입니다.
그 것은 마치 꽃대와 꽃이 너무나 다른 모습인 것과 같습니다.
식물은 꽃을 피우려고 열심히 꽃대를 키워냅니다. 그러나 종내는, 그 꽃대 위에 찬란하게 피는 꽃은, 너무나 꽃대와는 다른, 엉뚱한 모습으로 피어납니다.
깨달음은 그와 같습니다. 정말로 도둑같이 찾아옵니다. 자신의 것을 키우고 가꾸어서 행복을 찾으려는 그 마음과 다르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 자신이 키우고 가꾸어서 행복을 찾으려는 그 마음을 무참하게 깨어버리고는,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삶을 우리에게 갖다 주는 것, 이런 도둑 같은 모습으로 깨달음은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도둑은 우리에게 많은 상처를 주지만, 도둑 같은 것은 우리에게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자유를 줍니다. 이제까지 했던 헛된 노력을 그만 두게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렇게 하면, 깨달으리라고 믿은 그 믿음과 노력과는 너무나 다르게 깨달음은 찾아옵니다.
그냥 그렇게 가꾸고 기르면서 수행하면 된다고 믿는 자들의 말은 다 틀린 말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믿을 뿐 그곳에 가보지 못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곳에 가보지 못했기에 그렇게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 본 자는 이미 그곳을 알기에 그곳을 가려고 다시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노력을 해야 하고 또 노력만 하는, 가보지 못한 자의 말이 어떻게 맞다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왜 선지식들이 백척간두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버리는 백척간두에 진일보를 하라고 하겠습니까?
백척간두까지 올라온 그 모든 노력과 힘들게 쌓았던 자신의 모든 재산을 한 순간에 던져 버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백척간두까지 올라온 그 믿음이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더 힘들게 하고, 하나를 하면 둘을 하라고 하고, 또 셋을 하라고 하면서, 끊임없이 교육받고 또 자신이 세운 그 잣대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자신만을 발견하지 않았나요?
도를 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았나요? 이렇게 노력하면 저런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믿음이, 너무나 처참하게 산산이 부서져버린 기억들이 없나요?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사람을 만나러 갈 때에 준비했던 말들이 하나도 쓸모없을 때를 느껴본 적이 없나요?
저도 그래왔습니다. 어릴 때의 불우한 환경, 그리고 힘들었던 결혼, 직장생활……. 그 무엇 하나,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통 받지 않는 영원한 그 무엇을 향해서 찾아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거의 사십 여년, 얻은 것은 그 완전한 그곳에는 도저히 갈 수가 없는 자신의 패배적인 모습만이 내게 돌아왔을 뿐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나를 완전한 상에 맞추려는 그 생각이, 그것에 맞지 않는 나를 고통 속에 빠뜨리고 힘들게 했을 뿐이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생각의 그 것은 완전하지만, 순간순간 살아가는 내 모습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에 대한 향수(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완전함에 대한 미련)를 이기지 못하여서, 계속 그것을 향해서 나아갔습니다. 그러할수록, 그 완전함과 그곳을 향해 가는 내 모습이 어긋나기만 할 뿐, 내 모습은 내 스스로도 못마땅하기만 했습니다.
스스로 도를 이야기하는 지식은 엄청 쌓여 갔지만, 갈수록 지식으로 알은 만큼의 도는 내게서 더욱 멀어져만 갔고, 나는 그러하지 못하니, 남이 보는 시선 또한 내게는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 따로 행동 따로, 그렇게 분열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나날이었던 것입니다.
늘 남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월까지 겹쳐서, 못난 나를 더 못나게 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으면, 한 걸음조차 내어 딛을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갔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도를 구하는 자이고, 도는 완전한데, 또 주위의 사람들에게 열심히 도를 이야기했으니, 완전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이지 않으면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의 연속인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속에서 마음은 꼬드깁니다. "이만큼 해왔잖아, 이제 놓으면 어떻게 해? 조금만 더 하면 될 거야……."
마치 도박에서 꼭 이길 것 같은 마음에 계속 돈을 걸다가 패가망신하는 꼴이 되어 갔습니다.
아.......... 그토록 남들에게 이런 길이 완전한 길이고 이러한 길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고 나 또한 그토록 굳게굳게 믿었던 그 길이, 나에겐 힘이 되어주고 자유를 주긴 커녕 오히려 나를 이중적인 인간으로까지 만들어갔습니다. 스스로의 속에는 갈증이 여전히 있으면서, 남들에게는 마치 도를 아는 자인 것처럼 행세하도록 만들어 갔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인연으로 한 사람을……. 아니 몇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그러한 노력으로는 절대로 자유를 얻을 수가 없어. 깨달음을 구하려는 그 마음을 쉬어야 해. 그래야만, 자유와 평화가 올 것이야. 노력해야할 그 무엇도 얻어야 할 그 무엇도, 아무 것도 없어!" 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처음에 별 미친 소리를 다 듣네……. 하였습니다. 참으로 그러했습니다. 이렇게 노력하고 또 노력해도 아직도 안 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내 속에는 모자라고 부족한 것밖에 없는데, 깨달음에 대한 노력마저 그만두라니……. 또 그토록 있다고 믿었던 그곳에 아무 것도 없다니…….
참으로 황당하고 미친 소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나 힘이 드니까, 그들의 소리에 뭔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그들과 많은 세월을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속에 붙어있는 습이 너무나 두꺼워서, 앎의 업장이 너무나 두꺼워서(참으로 지식은 우리를 똑똑하게는 하지만, 그 업장의 두께는 지식을 쌓는 만큼 쌓여가기만 합니다.) ‘ 또 그들의 말을 지식으로 쌓아서 써먹습니다. 즉, 머리로는 알음알이로 이해하여서,(그들의 말이 너무나 정확해 보이니까.) 스스로는 온갖 분별에 시달리고, 남들 앞에서는 남들의 시선을 온통 의식하고 심지어 아무도 없는 곳에서조차도 누가 보는 것처럼 의식하여 조금이라도 보다 멋지고 나은 모습을 지으려면 서도 남들에게는 ‘있는 그대로 살아라.’ 하더란 말입니다. 하하하....
그렇게 나는 저도 모르게 끊임없이 어떤 완전함을 구하는 모습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이중적인 모습의 삶을 살고 있었던 거죠.
참으로 마음이라는 그 알음알이(분별)는 진정한 양식이 되어주질 못합니다. 남에게 자랑하는 훈장만 붙이게 하고, 스스로에겐 조금의 자유도 주지 않는 놈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깨달음이라는 이름에 걸려, 4개월을 울고 다녔는데,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울고 또 울고, 꿈과 생시가 둘이 아니며, 깨달음을 얻으려 하면 할수록 아무 문제없던 나는 점점 더 깨달음에는 아주 먼 중생으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다시는 그런 고통 속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4개월이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스쳐가는 생각
“이거 생각이잖아?”
그 순간 4개월을 나를 핍박하고 찢고 쥐어짜며, 자살 충동까지 일으키던, 숨 막히고 죽을 것 같던 그 고통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가 번뇌와 고통에 드는 것은 오직 시비분별하는 한 생각, 즉, 모든 것이 마음의 장난이요, 생각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서, 깨달음을 구하려는 그 것 자체가 바로 마음의 장난임을 알게 되고, 도저히 나의 노력으로는 그것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내게서 일어나는 못나고 부족하고, 아니 나아가, 더럽고 추악한 그 모습을 아무리 내가 인위적으로 노력해서 없애려고 해도 없앨 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쩔 수가 없이, 사십 여년의 모든 노력을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거죠. 완전하게 되려는 그 노력으로는 아무리해도 안 되니까요.
부족한 자가 부족한 마음으로 아무리 용을 써도 부족한 결과밖에 나오지 않는 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살은 필연적인 결과인 거죠. 그, 어릴 때부터 잘나고 완전하게 되어야한다는 그 교육, 그리고 마치 그렇게 될 것이라는 성인들의 이야기 속에서.... 그렇게 무작정 내 식으로 믿어버린, 있지도 않은 것을 마치 있다는 식으로 믿어버린 것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살아왔던 결과인 거죠.
그래서 완전해지려는 자유와 평화를 얻으려는 모든 노력을 그만두었습니다. 아니 그만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해왔던 모든 것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회개(回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노력하고 노력하던 그 마음을, 그냥 내 던져버린 것입니다. 아니 어쩔 수 없이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자유는커녕 괴로움만 더해갔으니까요.
그렇게 모두 한 생각이 짓고 있음을 알고는.
"아..... 내가 그토록 미워하고 더러워하고 없애려고 한 그 모든 것이, 바로 그대로 나였구나...." 였습니다 |
댓글목록
청정심 님의 댓글
마음을 돌아보니 정말 뭔가 완전한 것을 찾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아예 마음은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말로는 그래 그냥 믿으면 되지..이미 깨달아 있다잖아! 그렇게 속이고 있는 모습이 있었네요.
완전하게 놓아버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다시한번 느낍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행위자가 또 속이지는 않겠지요.?.^^
선생님에 법문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_()_
윤기붕님의 댓글
도움이 되신다니 저도 좋습니다.
완전히 습이 떨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다고 깨어있음이니 지켜보기라는 것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즉각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일 좋은 수행은 선지식의 법문을 듣는 것입니다. 그것도 직접 말입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오.^^
청정심 님의 댓글
네네~~ 그냥 사는게 왤께 어려운지 ...내려 놓아야겠네요..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청정심 ㅎㅎ 그동안 그냥 살지 않고 온갖 이름과 의미를 쫓아다니며 살았기 때문이지요.
청정심님의 댓글
윤기붕 네 선생님..^^*~~수행을 쥐고 있었어요..^^
윤기붕 님의 댓글
청정심 지금부터라도 돌이키면 됩니다.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윤기붕 님의 댓글
새해가 코앞입니다.
복 마니 받으세요~*^^*
파공님의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