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법에는 안 되는 것이 없다.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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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법에는 안 되는 것이 없다....
이 말은 무엇이든 원하면 다 된다는 뜻이 아니다.
법에는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은 법에서의 일을 말하는 것이지 인간 생각에서 지은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을 뒤집어 말하면
인간의 생각과 욕심은 되든 안 되든 일단 목적을 세우고 욕심을 가지면 무조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보면 안 되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법에서는 될 것은 될 뿐, 안 되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이것을 인간의 생각으로 겨우 말하면(왜냐하면 법에는 안 되는 일 자체가 없기에) 될 것은 되고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니? 그냥 될 것은 되고 안 될 것은 안 된다고 하면 될 것을 말을 뭐 그렇게 어렵게 배배꼬듯이 말하냐?”
할 수 있다.
하지만, 법에는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말이 더 정확한 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인간의 생각은 일어나지도 생기지도 않을 것조차도 생각으로 지어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안 되는 것도 생각을 한다.
그래서 안 되는 것, 또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더 설명하면 목적을 세우고 욕심을 내면 그 목적이 실제로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되든 안 되든 그림을 그리고 탐을 낸다는 말이다.
이것이 인간 번뇌의 치명적 근원이다.
예를 들어 어떤 게으름뱅이가 집에 가만히 앉아 남이 잘 사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일확천금을 꿈꾼다. 그리고는 세월을 보내고는 안 되네 한다.
하지만, 법에서는 그런 일 자체가 없다.
법은 인연이 되면 무엇이든 만들어낸다.
인간이 안 되는 일을 아무리 생각으로 모양을 지어도 법에서는 그럴 일 자체가 없다. 인연의 소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은 매 순간 인연에 의해서 존재할 뿐 인간의 생각처럼 쓸데 없는 추론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주 탄생 이래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되는 것들이었지 어디에도 안 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것은 법은 인연이 되는 것만 만나서 이룰 뿐 인연이 되지 않는 것은 아예 만나지도 않고 인연조차 없다. 그래서 되는 것만 있을 뿐, 안 되는 것은 인연의 싹조차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애초부터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즉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인생에는 가정이 없다는 말이다.
즉, 인생은 우리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법의 인연으로 흘러갈 뿐이다. 다만 그 법의 인연에 각자가 얼마만큼 인연의 조건으로 기여하는가 하는 것으로 세상이 변하며 흘러가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역시 태어나고 생각을 이루고 이렇게 살아가는 것 역시 우리 생각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고 모두 인연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각자가 인연의 조건으로 기여한다고 하여 우리가 마치 법과 다르게 의지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 역시 다 법이 인연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사들이 스스로 기관목인(機關木人), 요즘 말로 하면 로봇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법의 로봇을 일러 기관목인이라고 한다. 일체가 법이 만들고 법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체가 한법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주든 인생이든 모두 될 일만 되지 안 될 일이란 것 자체가 없는 것이다.
이제 법에서는 될 것은 될 뿐, 안 되는 것은 없다는 말이 좀 이해가 되는가?
하지만 인간에게 판도라의 상자에서 겨우 빠져나온 인간의 빛이란 희망이라는 것 때문에, 되지도 않을 일을 꿈꾼다. 그리고 안 되는 일에 절망한다. (희망이란 말은 비교하고 분별하는 생각에서 생겨난 말이다. 인간이 애초부터 비교하고 분별하지 않았다면 서로를 해치거나 스스로를 비하하고 쥐어뜯는 번뇌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보라. 안 되는 것이 현실에 존재하는지...
오로지 허망한 생각 속에 욕심으로 자리 잡고 있을 뿐, 현실세계에는 어디에도 없다.
이것이 이 법의 엄정한 법칙이다.
이것이 상대적인 세계와 절대적인 세계의 차이이다.
절대적인 세계는 오직 그것밖에 없어 안 되는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적인 세계는 늘 비교하여 있지도 않은 것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안 되는 것이 생긴다. 그리고는 인간은 그 안 되는 것이 자신의 허망한 생각이 만들어낸 것인 줄도 모르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절망한다. 이것이 번뇌다.
물론 되는 일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된다 하여도 인간의 욕심처럼 그렇게 영원히 인간 옆에 있어주지 않는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 되는 일의 경우에 대한 잔상 때문에 되지도 않을 일을 꿈꾸고 온갖 범죄와 번뇌에 빠져드는 것이다.
세상의 일은 인간의 욕심이나 계획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연기법에 의한 인연에 의해 흘러간다. 그리고 그 인연의 수많은 조건에 인간들의 인위적인 목적과 계획과 욕심이 조금 개입되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그럴듯한 그림이 생기지만, 하루에도 수없이 흐림과 맑음이 교차되는 삶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리고는 결국은 생전에 욕심내었던 모든 것을 뒤로하고 형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부처님께서 중생들의 생각은 전도되어 있다고 한 이유는 인간의 삶의 아주 많은 부분이 이러한 허망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곤 안되면 안 된다고 한탄하고 원망하는 것이다.
애초에 있을 일이 아닌 것을 말이다.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아무리 바라도 안 되는 것은 다만 생각이 허망한 그림을 그렸을 뿐 애초부터 그럴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럼 노력조차 하지 말라는 말이냐?’
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물론 인간의 속성이 비교하고 따지고 노력하는 것이니 노력마저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노력해서 아니다 싶을 때 아무 미련 없이 어떤 회한도 없이 빠져 나오라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아예 인연이 없는 것이다. 인생은 아니 법에는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오면서 돌아보면 그때는 그것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일들이 얼마 가지 않아 짐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많으며, 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삶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을 한두 번 느꼈을 것이다. 첫사랑과 헤어질 때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있었어도 지금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식과 살아가지 않는가?
모든 것이 인연으로 흘러갈 뿐, 인간의 욕심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안 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깨달음을 꿈꾸는 자는 이 점을 명심하라. 그리고 자신이 그려놓은 모든 깨달음과 법에 대한 그림을 다 지워라.
그것은 안 되는 일을 만들어내는 허망한 생각일 뿐이다.
조사들이 인연 따라 살아가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인연 따라 살아가는 자는 안 되는 일이 없다.
왜냐하면 삶을 왜곡시키는 내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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