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원효(元曉)스님의 화작(化作)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4,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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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원효스님이 가마를 타고 궁으로 가는데 대안(大安) 대사를 만났다.
대안 대사는 거지꼴에 술에 취해서 가마를 보고 노래하듯이 소리쳤다.
“부처님 말씀에
위도 없고 아래도 없으며
있음도 없고 없음도 없는데
어떤 놈은 복이 많아
사람위에 사람이 타고 가며
좋은 옷을 걸치고 좋은 곳만 들락거리느냐.
또 어떤 놈은 천지가 내 집이고. 내 법당이니
걸림도 없고, 막힘도 없으며, 천지가 다 내 것인데
어떤 놈이 더 편한가 어디 한번 해보자.”
그 소리를 들은 원효 스님은 마치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것과 같았다.
그 후 대안대사는 원효에게 사람을 보내어 자신이 거처하는 곳으로 오게 했다.
원효가 찾아 왔을 때, 마침 어미를 잃은 새끼 너구리가 배가 고파 낑낑거리고 있었는데, 대안대사는 원효에게 배고픈 새끼 너구리를 위해 불공을 좀 드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원효는 목탁을 꺼내어 염불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고 있던 대안은 원효를 막으면서,
“여보시오 스님, 그래서야 새끼들의 배가 불러 오겠소? 내가 하는 것을 보시오”
하고 옆으로 밀치고는, 죽을 쑤어서 새끼 너구리들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러면서
“배고픈 너구리에겐 이게 최고의 불공이요.”
라고 하였다.
혜공과 더불어 원효와 동일시대에 살고 있는 대안 스님으로 아직도 법상(法相)에 걸려 있던 원효의 스승 역할을 많이 했다.
그 시대에는 사찰(寺刹)에 적(籍)을 두지 않고 무애행(無碍行)을 행하던 스님이 꽤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대안대사가 원효에게 불법에 대해서 논할 게 있다고 하며 원효를 청하여 북촌(北村)으로 데려갔다.
당시 서라벌의 북촌은 천민이 살고 있는 곳으로 단지 주거지만 있는 곳이 아니라 시장과 환락가도 함께 있던 곳이었다.
대안대사는 원효를 북촌의 한 술집으로 데려가서 주모에게 술을 시켰다.
그리고는 옆 자리에 기녀들을 앉혀놓고는 원효의 옆에 앉은 기녀에게 농(弄)을 던졌다.
“네 이년아! 그 분이 누구신지 아느냐?”
하니 기녀는 얼굴에 웃음을 띠고는
“네 알고말고요.~ 높으신 덕을 지니신 원효스님이시잖아요?”
그러면서 교태스런 몸짓으로 원효의 옷자락을 잡고 원효를 앉았다.
그러자 대안대사는 껄껄 웃으면서
“어허~! 그년 참~. 야! 이년아, 그렇게 높은 덕을 가진 큰 스님에 그렇게 안기면 덕망 높은 스님께 해를 끼친 죄로 마땅히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이니라.”
하자, 그 기녀는 도리어 웃으면서
“아니? 무엇이 걱정이에요? 이렇게 덕이 높으신 스님인데 소녀 따위야 금방 지옥에서 건져주시겠지요.”
하며 대안대사 농을 농으로 받으며 깔깔거렸다.
그렇게 농익은 농지거리에 승복을 입고 앉아 있던 원효는 몸 둘 바를 몰라 하고, 출가한 자신이 이러한 곳에서 술상을 마주하고 있다는 것에 얼굴이 붉어져서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그렇게 떠나는 원효의 뒤에 대고 대안대사는 껄껄 웃으며 소리쳤다.
“이보시오 원효대사! 여기 지금 이렇게 구제받아야할 중생이 많은데, 이 중생들을 여기에 두고 그대는 어디로 가서 어떤 중생을 제도하겠단 말인가?”
그 소리에 얼굴이 화끈한 원효는 그곳을 도망치듯 나오면서도 대안대사의 호통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스스로 한 소식을 했으며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마음먹은 자신이 천민촌을 피해 달아나는 꼴이 참담하였던 것이다.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고, 귀천(貴賤)이 둘이 아니며, 생사(生死)가 둘이 아니고, 공(空)과 색(色), 선과 악(善惡), 옳음과 그름(是非) 등등이 둘이 아니며, 일체가 마음이 짓는 다는(一切唯心造) 사실을 무덤 안에서의 해골 물로부터 깨달은 그에게,
대안대사의 청으로 정작 북촌의 술집에 가자,
머릿속에 있던 이러한 불이법(不二法)은 어디로 갔는지, 이러한 곳은 승려로서의 신분과 체면에 맞지 않다는 생각으로 자신도 모르게 분별심이 작동하여, 자신이 있을 곳이 못 된다는 생각에 참을 수 없어, 도망치듯 자리를 박차고 나온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또 혼란스러웠고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곳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앉아 있는 것은 더욱 견딜 수 없으니, 자신의 깨달음과 수행이 실제 세상에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참담함에 빠진 것이었다.
그렇게 부끄러운 자신을 두고 고심을 하던 그는 자신의 이분적인 분별심의 남은 찌꺼기를 없애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감천사(甘泉寺)라는 곳으로 가서 부목(負木 : 절에서 땔나무를 하여 들이는 사람)을 살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이 도리를 알아 반듯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부목 이외에도 밥을 짓고 빨래 등을 하면서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그 때에 그 절에는 방울스님이라고 괴팍한 스님이 있었다.
그 스님은 절 법규(法規)도 잘 따르지 않고 공양(供養)시간도 맞추지 않으며, 또 스님으로서의 체면이나 위엄이나 권위도 어디로 갔는지 마치 철없는 어린애 같이 스님 같지 않은 행동을 하면서,
늘 공양시간이 지났는데도 걸핏하면 찾아와서 누룽지를 내어놓으라고 떼를 쓰는 등 괴팍한 행동을 하였다.
그래서 스님들 사이에서는 물론 부목들마저도 방울스님을 업신여기고는 스님 취급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원효는 이미 한 소식을 한 사람이어서 부목일도 꾀부리지 않고 잘 하고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게 하는 것은 물론, 방울스님도 잘 모셨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방울스님이 누룽지를 얻으러 오면 귀찮아하고 무시했지만 원효는 오히려 누룽지를 모아 뒀다가 드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의 스님들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가지고 토론하고 있는데 원효가 듣기엔 절대법(絶對法)인 대승(大乘)을 상대법(相對法)인 세간적이분법(世間的二分法)으로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며 떠들고 있으니, 한심하기도 하여 참다못해 한마디 참견을 했다가 부목이 감히 참견을 한다고 꾸지람을 들었다.
당시 신라(新羅)는 신분사회였기 때문에 스님들까지도 절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업신여겼고, 감히 스님들의 이야기에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스님들이 아무리 논쟁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자, 주지스님에게 가서 도움을 청하니 원효가 지은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를 주면서 보라고 했다.
그들은 그 책을 보며 너무 쉽고 잘 해석해 놓았다고 칭찬하며 좋아하다가, 문득 부목인 원효가 말한 그 이야기와 너무 흡사한 느낌이 들어서 원효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런 분위기를 느낀 원효는 자신의 신분이 탄로 날 것 같아 도망치기 위해 밤이 이슥할 때 남몰래 절을 나서는데 문간방에 잠을 자던 방울스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원효 이사람. 잘 가게나 ”
머리에 한 방을 맞은 원효는 미친 듯이 산을 내려오다가, 문득 북촌에서 빠져나올 때에,
“이보시오 원효대사! 지금 마땅히 구제받아야할 중생을 여기에 두고 그대는 어디로 가서 별도로 중생을 제도하겠단 말인가?”
라고 자신에게 했던 대안대사의 말의 참뜻이 이해가 되었다.
정작 구제받아야할 사람은 북촌사람도 아니고 감천사 사람도 아니었다.
바로 중생을 제도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도, 분별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자신의 그 마음이, 진정으로 제도해야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금강경 3분 대승정종분에 보면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은 마음을 낼지니 ‘있는바 일체 중생들을 내가 무여열반에 들게 하여 적멸케 하겠다.’라고 하라. 이와 같이 모든 중생들이 제도되었으나 한 중생도 제도된 적이 없느니라. 왜 그런가? 만약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니라.”
라고 하였다.
그가 감천사에서 방울대사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킨 것은 부목이 부목다워야 하는데 원효는 지나치게 수행을 한 사람의 티를 내었기 때문이었다.
보살(菩薩)이 화작(化作)하는 모습은 즉 세속(시장바닥)에 들어가 중생들과 같은 모습으로 같이 살아가면서 제도하는 것을 말하는데, 세속에 들어가는 것은 심우도(尋牛圖) 또는 십우도(十牛圖)에서 마지막 단계인 입전수수(入纏垂手)의 단계이고, 거기서 사람들과 어울려 교화하는 것을 화작이라고 한다. 화작은, 심우도에서 이미 소도 없고 나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보살의 모습이 아니라 중생의 모습으로 제도한다는 것이요, 또 제도한다는 마음조차 없이 같이 살아가는 것을 일러 화작이라고 한다.
그런데 원효는 자신의 깨달음을 완성한답시고, 부목을 살면서도 아직까지 자신의 수행의 반듯한 모습으로 다른 부목들과 다른 모습으로 있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다른 부목들의 눈에는 착한 사람, 또는 지나치게 모범적이어서 시쳇말로 밥맛없는 놈이었지 자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에 감화를 받아 제도가 되겠는가?
그래서 방울대사에게 자신이 원효임을 간파당한 것이었다.
원효는 감천사를 나와 원효는 북촌에서 있었던 일과 감천사이 일을 곰곰이 생각해본 후에 그는 진정한 화작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일설에는 요석공주와의 일은, 화작을 하기 위해 북촌으로 다시 들어갔으나 이미 원효가 큰 스님으로 소문이 나 있어 그들과 화합할 수가 없어서 일부러 파계를 했다는 설이 있으나, 어찌되었든 역사 속 원효의 공식적인 행적의 기록은 그 즈음에서 끝이 난다. 다만 민간의 설화처럼 신라의 방방곡곡에 원효스님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나, 그것이 오히려 이름과 신분과 모습을 감춘 원효스님의 참 모습을 일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에 어떤 고을에 원님이 부임을 했는데 이 원님은 부임이후 어떤 일도 하지 않고 또 수하들에게도 무엇을 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그런데도 참으로 묘하게도 일 년이 지나자 고을에 싸움이 없어지고, 이 년이 지나자 도둑이 없어지고, 삼년이 지나자 모든 집이 밤에도 문을 잠그지 않고 길거리에 물건이 떨어져도 주워가는 사람이 없었다.
원님도 요즈음말로 공무원이라 때가 되어 다른 곳으로 부임을 하러 떠나는데 마을 사람들이 원님을 칭송하여 공덕비를 세웠다. 그 말을 들은 원님은 스스로에게
“참된 도는 표가 나지 않아야 하는데 나의 공덕비가 세워지는 것을 보니 아직 나의 도력이 한참이나 멀었구나.”
하고는 관직을 사직하고 자신의 도를 더욱 단근질하기 위해 행방을 감추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화인지 설화인지는 몰라도 표가 나면 아직 덜 익었다는 뜻을 담은 이야기다.
화작을 하려면, 이 자리만 분명해서는 절대 하지 못한다. 원효도 무덤에서 마신 물로 일체가 마음이 짓는다는 도리를 알았지만, 마음에서 시비와 분별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대안대사와 방울스님에게 일종의 꾸지람을 듣는다.
무분별지(無分別智)와 대원경지(大圓鏡智)라는 것이 있다.
무분별지는 말 그대로 분별없이 대상경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지혜이다. 그리고 대원경지는 크고 원만한 거울과 같은 지혜이니, 거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것이고 대원(大圓)이라는 것은 크고 원만하다는 말인데, 크다(大)는 말은, 곧 이 한 법, 즉 우주 전체를 말하는 것이고, 원(圓)은 원만하다는 뜻이니, 일체를 가리지 않는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니, 대원(大圓)은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원경지는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을 거울처럼 일체의 시비와 분별을 여의고 있는 그대로 비추어준다는 말이다.
무분별지나 대원경지나 같은 말인데, 여기에는 안팎이 사라지고, 대상과 나의 경계도 사라져 ‘나’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원효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알았다는 마음조차 버리고, 생각이 없다는 생각조차 버렸기 때문에 시장바닥에 뛰어 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미 먼저 시장바닥에 뛰어든 보임의 스승인 대안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참 공부의 끝은 이와 같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 도리를 아는 것은 이제 겨우 아이로 태어나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밖에 다름이 아니다.
밥을 먹고 운동을 하면서 뼈와 근육이 튼튼해져서 제대로 생각도 하고 걷고, 뛰고 또 일을 할 때에 비로소 사람노릇을 한다고 하듯이,
이 도리를 깨치고 난 뒤에도 수많은 시간을 거쳐, 선사어록이나, 선지식의 법문을 통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법을 기르고, 분별이 사라지고 내가 사라져서 무심이 되어야 비로소 이 공부가 끝나는 것이다.
아기 때에는 일어나 걷는 것이 모두 기특하여, 거기에 일일이 걷는 내가 있고, 밥을 먹는 내가 있어, 어른들의 칭찬을 받는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세상을 마음대로 살아갈 때가 되면, 하는 것이 자랑거리도 되지 않고 또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다.
그렇게 자연스러워지면 내가 뭔가 한다는 생각도 역시 자연히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공부에서 ‘내가 안다.’는 생각이 있으면 이는 한참이나 먼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일 뿐이다.
(시비분별의 세상의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모든 것이 서툰 아이를 이 도리를 처음 깨달아 아직 아는 것이 신기할 때로 비유하고, 이제 일체의 행동들이 능숙한 상태의 어른을 깨달음이 순숙하여, 이 도리를 알고, 또 지혜를 쓰는 것이, 본래 우리가 법이기 때문에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안다는 것조차도 사라져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비록 각자의 인연에 따라 화작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결국 공부의 끝은 이 한 법을 알고 체험을 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안다는 것도 사라지고, 분별도 사라지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워 질 때 비로소, 공부라는 말을 놓아도 될 때일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티끌만한 것이라도 마음위에 남아 있으면, 마음이 있게 되고,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자연히 자신의 눈과 세상이 어긋나서 고통과 번뇌가 일어날 것이다.
물론, 세상의 삶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세간의 삶에서는 그 대상에 따라 또 세간의 법을 끊임없이 배워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자신에게 ‘도리를 아는 나’라는 것이 떨어지고 무분별지를 터득한 자는, 세간의 공부는 절로 될 것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공부에 들어온 사람은 부디 이것을 명심하여, 어렵게 이 길에 들어와 힘들게 이 자리를 알아 놓고는 작은 안심과 만족에 머물러, 기나긴 고난의 세월을 헛되게 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에서 어쭙잖은 긴 글을 올린다.
댓글목록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법문 감사합니다.()
idlesky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잘 있제?
idlesky님의 댓글
윤기붕 탈 없이 잘 지내요.
心明 님의 댓글
대안대사와 원효대사가 지금 여기서 펄펄 살아있군요.
심명도 적천에서 지금 이렇게 샘물을 마십니다 그려!.
윤기붕님의 댓글
간간히 흔적을 남기시니 잘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포세인죤님의 댓글
참으로 와 닫습니다. 더욱 더 노력하겠습니다. ()()()
無事人님의 댓글
참말로 지금 땅 밟고 사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나도 막 열차에서 내려 땅을 밟았습니다.ㅋㅋ^^
초당님의 댓글
원효의 길을 따라서..... 이 공부의 길은 참으로 길고도 깊군요.
윤기붕님의 댓글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의 생각이 전도되어 있다."
라고 하셨듯이 우리가 전도된 생각에 젖어 살아온 세월과 습이 너무 길고 짙어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길 뿐,
우리는 본래 법이기 때문에 법 자체는 긴 것도 깊은 것도 없습니다.^^
초당님의 댓글
그렇군요.^^ 뒤집힌 것을 원래 포지션으로 되돌려놓는 것이 공부라면 참으로 간단한 거로군요. 각자의 뿌리깊은 습 때문에 관점을 바꾸는 것이 어려울 뿐....
윤기붕님의 댓글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달마조사께서 이입사행론(理入四行論)에서 이입, 이치로 깨달아 들어가는 법에 대해
"경전에 의해 불교의 본질을 알고 모든 생명있는 것들이 진리의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감각과 망상에 의해 가려져 있어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그냥 아~!하고 늘 듣는 말이라고 보고 넘어갈 수 있으나,
엄밀히 보면
'도는 절대로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 때문에 어려워진 것이다.'
라는 뜻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네가 생각만 바꾸면 된다."
라는 것이어서 공부에서 어렵다는 생각을 내려놓게 합니다.
이는 사실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윤기붕 사람들은 도가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어찌 도를..."
하며 아예 접근도 하지 않는데
도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는 것을 알면 속지 않고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하구요.
불교에서는 교만심도 없애라 하지만 퇴굴심(退屈心)도 경계하는데
퇴굴심을 없애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