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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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선사의 파전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195

16-03-19 13:10

본문

아주 오랜 옛날에 중국의 어떤 사람이 청운(靑雲)의 꿈을 꾸고 있었는데 가진 것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아무 것도 없었지만, 어떤 여인과 만나면서 자신의 뜻과 서로 같은 뜻을 가진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그 여인을 연모하여, 마음을 내어 구애(求愛)를 했으나 거절당했다.

후일 그는 때를 만나 자신의 재주를 펼쳐 귀한 신분이 되었다. 
그는 잊지 않고 있던 그 사람이 생각이 나, 고향으로 돌아가 과거에 자신을 거절한 여인에게 물으려 갔는데, 그녀는 이미 남의 부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어 했다.

 

오랫동안 그를 모셨던 시종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주인에게, 과거에 그를 무시한 여인을 다시 찾아간 이유를 물었다.
“대인께선 궁핍할 때 그 여인에게 청혼을 하여 거절당했으면서 왜 다시 갔습니까?”
그러자 그가 말했다.
“사람이 저 마다의 사연이 있다. 내가 그때엔 그 사람이 나에게 의탁할 만한 것을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이 마음에 들었어도 그 사람의 생각엔 내가 그냥 좋은 사람이었을 뿐, 자신을 의탁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었다. 실제로 난 그땐 비천했었다. 그것을 어찌 내가 좋아한 것만큼 바랄 수가 있겠느냐?”
“그런데 왜 찾아갔습니까?”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그때 그 사람에게 구애를 했을 때, 지금 돌아보니 혈기만 있었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리고 나도 사실 그땐 지금의 나를 알지 못했다. 그 사람은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어찌 그 사람에게 지금의 나를 알지 못했다고 그를 무시하겠느냐?” 

 

시종은 다시 말했다.
“그러면 지금은 그 사람이 이미 남의 부인인데 왜 다시 그런 말을 했습니까?”
하니 그는 말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모르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너무 연모하기 때문에 서로 몰랐고 어쩔 수 없던 과거를 지우고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이 있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연모하는 사람을 한두 번의 실수로 버리겠느냐? 그래서 내가 두 번째 기회를 잡고 싶었던 만큼 그 사람에게도 주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온전히 내 생각이지만 말이야.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을 내가 좋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 사람이 나를 보면서도 자신의 집을 지키려 하는 것을 보니 아쉽지만 내가 그녀를 참 잘 봤구나.” 

 

그러자 시종이 물었다.
“대인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혹시 그분이 따라 나섰다면 내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야 이놈아! 나는 이론과 법만 따지는 고지식한의 무리가 아니다. 실재를 살고 싶은 사람이니라.(당시 죽림칠현과 같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칭송을 받던 시대였다.)

내가 그녀를 칭송하는 것은 법에 따른 올곧은 성품에 대한 칭송이다.

하지만 아무리 옳은 법이라도 세상의 법이 사람의 긴밀한 마음을 어떻게 판단하겠느냐?
그래서 속마음은 그 사람이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 해주길 바랐느니라. 나도 행복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또한 한편으로 아쉽지만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라느니라.  

 

그렇지만 이렇게 돌아가면서도 그 사람이 세상 사람들의 눈 때문에 속마음을 감추고 있는 마음이기를 바라는 내 욕심을 지울 수가 없구나.
나도 이 자리에 올라오기 위해 그 많은 세월을, 뜻은 올곧아도 내뱉는 말까지 남을 의식하지 않고 마구 말할 수 있었겠느냐?(정치판의 술수를 말하는 듯) 
그러니 다만 자기 이익만 구하려는 무리만 아니라면, 막막하게 추운 곳에서 내민 손을 잡는다고 누구를 욕하겠으며, 그리고 그렇게 잡은 손이 엉뚱하게도 제물의 수레라면 (古시대엔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고 함), 그가 도망친다고 누가 또 그를 욕하겠느냐?
그래서 내 마음은 지금도 그 사람이 온다면 같이 가고 싶느니라.”
라고 하며 돌아갔다.

 

경허선사께서는 제자 만공에게 물었다.
"네가 만약에 파전이 먹고 싶으면 어찌하겠느냐?"
그러자 만공은 
"있으면 먹고 없으면 그만 두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경허선사는
"그래 너의 공부가 참~ 깊구나. 근데 난 말이야. 공부가 깊지 못하여 파전이 먹고 싶으면 좋은 파씨를 구하고, 또. 좋은 밀씨와 깨씨를 구해 농사를 잘 지어서 좋은 밀가루와 파와 참기름을 만들어 좋은 번철을 구해 그 위에 기름을 두르고 맛있게 구워 먹겠다."
라고 했다.
그 말에 만공은 등 뒤에 식은땀이 흘렀다고 한다.

 

병자호란이 닥쳐 인조가 남한산성에 갇혀 있을 때,

대신들은 척화론(斥和論 : 청과 끝까지 싸우자는 무리)과 주화론(主和論 : 겉으론 항복하고 뒤로는 명을 섬기면서 뒤를 생각하자는 무리)으로 맞섰다.

결국 대세가 기울어 주화론이 명분을 얻어 항복 문서를 쓰게 되었다.
주화론의 최명길(崔鳴吉)이 그 일을 맡아 항복 문서를 쓰고 있을 때

척화론의 중심인물이었던 김상헌(金尙憲)이 와서 최명길이 쓰고 있는 문서를 뺏어 찢어버린다.
최명길은 아무런 탓도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찢어 진 문서를 주워 붙여 다시 썼다. 그

러면 김상헌은 다시 찢었고 최명길은 역시 묵묵히 주워 붙였다.

그러기를 몇번,
결국 문서를 완성하여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치욕의 삼배구고두(세번 큰절을 하고 아홉번 머리를 땅에 찧음)의 형식으로 항복을 하고 조선어 전쟁의 화마가 그친다.

 

최명길도 원래 척화론자였고, 나아가 청의 기세가 드세니 군사를 일으켜 대비하자던 쪽이었다. 
하지만 대세가 완전히 기울어 남한산성에 쫓겨 오고, 기록에 보면 임진왜란과 달리 의병조차 없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의 조정에서 일단 사직을 보전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화친론자 즉 주화론자가 된 것이다.
척화론자들은 이런 최명길을 변절자라고 욕하고 김상현은 분을 못참고 달려와 문서를 찢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명길이 묵묵히 찢어진 문서를 집어들은 것은

비록 뜻은 달라도 문서를 찢은 김상헌이 조선의 기개를 세워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둘은 볼모가 되어 심양으로 잡혀가게 되고 심야에서 서로의 뜻을 이해하고 화해를 한다.

그 후 실록에는 이렇게 전한다.

 

"찢는 사람도 옳고 줏는 사람도 옳다."

 

세상의 일은 한 사람의 시선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그런 시각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이 없다.

하지만,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결과는 인연을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것만 소중히 여겨 남을 폄하하는 시비를 버릴 줄 모르고, 한 사람의 것만 아닌 세상을 마치 자신의 것인양 여기며 서로의 주장이 혼탁하게 섞여 한 죽통의 죽처럼 들끓으니 저마다 옳고 그름이 있어 시끄럽게 될 뿐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어쨌든 모두가 자신의 인연을 살 뿐이다.
그러니 지금 어떤 쪽이든지 옳은 쪽에 있다고 우쭐거리며 상대를 폄하하지 말라.

최명길은 만공처럼 미리 겁내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자가 아니라 경허선사처럼 열심히 파전을 붙여 먹으려했을 뿐이다.
김상헌 역시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파전을 붙이던 사람이다. 
다만 요리 레시피가 달랐을 뿐이다.
그러니 어찌 서로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

 

그와 같이 이법은 미리 겁내는 예측 따윈 하지 않고, 또 서로 뜻이 다르다고 내치지도 않는다.

다만 정식(情識)을 가진 사람이고 앞일이 어찌 될지 모르기에  경허선사의 파전처럼 열심히 노력할 뿐, 인연이 되면 인연의 삶에 충실하고 그렇지 않으면 제 삶을 살 뿐이다.

그래서 미천한 신분에서 귀하게 되어 여인을 찾아오고 돌아가는 그 역시 경허선사처럼 꼼꼼하게 맛있게 파전을 열심히 부치는 사람이다.

댓글목록

박제님의 댓글


법문 고맙습니다.
열심히 파전을 부치겠습니다.

청정심님의 댓글


파전 맛있지요..ㅎㅎ^^*

박제님의 댓글


청정심 반갑습니다
맛은 모르겠습니다만
제대로 구워질런지요?
다시 보입시다 건강하시고요

덕인님의 댓글


이른바 삼포세대라 불리며 헬조선이란 말을 서슴치 않는 요즘의 젊은 세대, 그리고 이른바 가스통 할배들이라 불리는 구세대들이 이 법문을 함께 읽고 스스로를 돌아 볼 수 있다면...그런 생각이 듭니다....가슴 시원해지는 법문 감사드립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고맙습니다^^

흐르는강물님의 댓글


선생님 법문 잘 듣고 있습니다
"일체가 한 법이다" 염불처럼 되뇌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내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토.일 법회가 있다면 참석하고 싶은데 평일이라 아쉽습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진정한 나는 따로 없습니다. 일체가 한 법이기 때문에 내가 바로 법 그자체입니다.
그리고 만법이 모두 법이니 일체가 평등하여 특별할 것이 없으니
모든 것이면서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일체가 다 그러합니다.
그래서 선지식들이
"본래 아무 일도 없다."
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 지역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하지만, 간절함을 잊지 않고 일체가 한 법임을 굳게 믿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으실 것입니다.
저도 님의 결과를 위해 함께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