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적천단상

의심에서 벗어나 자신이 부처임을 굳게 믿어라.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271

16-01-17 19:54

본문

 

 

일체가 한 법이다.

이는 유일하고 불변의 사실이다.

그래서 삼라만상 일체에는 오직 이 한 법만이 존재할 뿐, 사도(邪道)나 외도(外道)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도나 외도가 있다면, 있지도 않는 것을 있다고 하여 헛되게 시비 분별하는 우리의 한 생각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일체 만법이 오직 한 법이요, 부처이듯이 우리가 바로 법이요 부처다.

 

하지만 이런 말을 수십 번 듣고 또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꿈에서 깨지 못하는 것은

상대법과 이분법으로 인한 삿된 시비분별에 속아온 세월이 너무나 길고, 그 속음에 의탁한 헛된 믿음의 두께가 너무 두꺼워, 무의식 깊은 곳으로부터의 의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머리로는 아는데 확연함이 오지 않고, 확연함이 오지 않으니 체험이라는 것에 기대는 것이다.

물론 체험이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직면하는 것이고, 그 경험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평생을 가도 잊어지지 않는 분명함이 있다. 그래서 계합이라고 하기도 하고, 견성(見性)이라고 하기도 하고, 체험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통칭 깨달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자신이 어디에 속고 있는 줄 모른다는 것이다.

 

일체가 한 법이다.

그래서 이미 우리는 이 법이요, 부처다.

그런데도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 속고 있든지, 무엇을 모르든지 간에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모르든 간에 분명한 것은 일체가 한 티끌도 어그러짐 없이 완전한 법성을 가지고 있고, 법 그자체이다. 물론 인연으로 성주괴공(成住壞空 : 일어나고 머물고 허물어지며 사라지는 것)하기 때문에 만법이 스스로의 성품이 없고, 찰나에만 존재하는 것이지만,

존재할 때에는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그리고 이 한 법과 연기법이 늘 변하지 않고 존재하여서, 일체 만법이 매 순간 변하지만, 그 변하는 것이 끊임없이 이어져 우주에는 늘 만법이 가득하다. 그래서

“쇠사슬처럼 이어져 있다.”

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한 육조스님께서는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이 육신을 떠난다.”

고 하여,

생각이 비록 인연으로 일어나 변하지만, 우리에게 법신이 상주(常住)하기 때문에, 아니 매순간의 우리가 바로 법신 그 자체이기 때문에,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처럼, 이 우주에 있는 만법은 찰나에만 존재하지만, 그 찰나가 끊임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찰나의 삶을 끝없이 이어가고 있고,

또 이렇게 이어지게 하는 것이 바로 이 한 법이요, 연기법의 작용이니, 찰나의 진실한 법계가 끝없이 이어지는 오직 법만의 세계에 살아간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 매 순간의 우리 역시 완벽한 법 그 자체요, 부처이니 한 점의 모자람이 없다.

 

자! 그러면,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중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이 모자라서 무엇을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는 것 일까?

아니면,

자신이 법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만 알고 실제로는 무의식의 밑바닥에서 자신이 부처라는 사실에 완전히 몸을 맡기지 못하는 의심이 있기 때문일까?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늘, 알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행복한 자는 행복을 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행복을 구한다는 자체가 이미 자신은 불행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래서 알려고 한다는 것은 모른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그 모름이라는 것은 부처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자신이 부처라는 것은 말로만 하고 다니지,

실제로는 안으로 자신이 중생이라는 것에 대한 헛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즉, 말로만, 머리로만 자신이 부처라고 하면서 마음속에선 불신의 씨앗을 끝내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스스로 부처라는 것을 머리로나마, 그래도 알고 있다면 잘 생각해보라.

의심을 거두는 것이 제대로 된 공부일까?

아니면, 말만 그렇게 하고는 속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이 부족하다고 탓하며 의심하고 알려고 하고 구하려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공부일까?

 

의심은 의심할 것이 있어서 의심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심하기 때문에 의심한다.

그리고 믿음은 비록 의심이 있어 약하더라도, 믿으려고 노력하고 애를 쓸 때 믿음이 견고해지고,결국은 의심은 사라진다.

 

특히 일체가 한 법이고, 우리가 진짜 부처인 이 싸움에서는....

 

일체가 한 법이다. 믿어라, 그리고 염불처럼 되뇌라.

단, 어떤 것이 법이라는 모양을 쥐지 말고 하라.

이 한 법을 깨닫지 않으면 아무리 생각해도 모른다.

알아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몰라도 의심하지 않는 모르는 그것이 바로 부처이다.

 

댓글목록

금싸래기님의 댓글


믿어세요!!!
인정하세요!!!
** 일체가 한 법이다 **
~~하나입니다 ~~~~ 선생님. 법문 감사합니다. 꾸벅

윤기붕님의 댓글


휴일 밤 편히 주무세요~*^^*

태정이할배 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날 추운데 몸조십하세요.

김창석(윈드)님의 댓글


감사합니다_()_

윤기붕님의 댓글


고생많죠?
새해도 됐는데 얼굴 함 보죠?^^

beinnow님의 댓글


명약관화(明若觀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