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사랑의 정의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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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는 사랑이란 단어에 참으로 감동을 많이 받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란 단어에 목을 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랑인데도 불구하고 사랑이란 이름에 가려서
진정한 사랑이 뭔지 모르고
사랑이란 이름에 매여서
그것이 마치 진정한 사랑인양 그것을 찾으려 헤매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이기적인 사랑?
이타적인 사랑?
아닙니다.
이기적도 아니고 이타적도 아닙니다.
사랑은 그냥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정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그냥 존재하기에 나 아닌 대상에게도 그렇게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기 위한 어떤 방법이나 노력이나 이벤트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스스로 존재하면 됩니다.
그렇게 공정해지면 됩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분별없음입니다.
그냥 흘러감입니다.
그렇게 분별없이 흘러갈 때에
과거에 내가 미웠던 사람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고
과거에 내가 좋았던 사람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고
만날 때마다 그를 새롭게 보게 됩니다.
그만 새로워집니까? 나도 새로워집니다.
모든 것이 변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만날 때마다 그에 대한 어떤 과거의 기억도 없기에
자연의 흐름 속에서 그를 보게 됩니다.
(그에 대한 어떤 과거의 기억이 없다는 말은 그를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그와의 인연에서 일어난 공(功) 과(過)에 대한 기억,
즉 잘잘못의 기억이 없다는 말입니다.)
내가 흐름을 멈추면 그도 흐름을 멈추게 됩니다.
내가 그에 대한 기억이 살아 있으면
그도 역시 내게 대한 기억이 살아 있습니다.
그곳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과거의 기억만 존재할 뿐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네 몸같이 사랑하라."
그 말씀은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됩니까?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에 대한 기억이 너무나 분명하게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흐름을 멈추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도 자신이 매순간 변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곳에는 사랑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나도 포함하고 원수인 너도 포함해서 삼라만상은 잠시도 머물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흘러가고 변화하고 새로워집니다.
나는 그런데 남은 안 그럴거라구요?
*^^* 그러한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 지 보십시오.
'나는 그런데 남은 안 그럴 거다'는 그 마음에 스스로 이미 머물고 있지 않나요?
삶은 누구도 예외 없이 흘러갑니다.
거부할 수 없이 말입니다.
우리의 닫힌 마음이 그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뿐이지요.
그것을 받아들여 보세요.
그러면 참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두려움도 고통도 힘듦도 많이 가벼워집니다.
그렇게 흘려보내는 것이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 그는 어제는 그랬지만, 원래 그렇지 않아, 어제는 어쩌면 그러할 일이 있었을거야.
그리고 그도 나처럼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지...”
라고 말입니다.
아니, 아예 흘려보내고 기억도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열린 마음입니다.
이 마음은 하나의 사건을 그 순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인연의 조건을 볼 수 있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내 몸을 사랑한다고 내 몸을 맨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물고 빨고 합니까?
아니지요?
역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다고 해서
그를 맨날 이쁘다 잘났다 하면서 칭찬하고 찾아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은 사랑이란 이름에 매여서
원수라는 이름에 매인 마음이 그냥 사랑이란 이름으로 무늬만 바꾸고 옷만 갈아입은 모습일 뿐입니다..
내 몸을 보듯이
“그래 바로 저게 그의 모습이야.”
이렇게 말입니다.
그리고 또 변하면 변한대로,
“그래 지금은 저게 바로 그의 모습이야.”
이렇게 말입니다.
그렇게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을 보는 마음이 진정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랑의 이름에 매인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증오에 매인 마음입니다.
사랑하려고도 사랑하지 않으려고도 하지 마십시오.
그냥 흘러가십시오.
마치 우리가 어제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을 먹고 똥을 누고
일을 하고 인연 따라 사람을 만나 일을 하는 것은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 생겨도 그러한 것은 변함없이 내게 왔다가 사라지듯이
나도 역시 그 일에 응하여 할 땐 하고 쉴 땐 쉬듯이
오늘 역시 그렇게 그러한 일을 하듯이
또 그렇게 흘러가는 우리의 삶을 버릴 수 없듯이
그렇게 세상 모든 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보십시오.
그것이 삶인 것을 보십시오.
그럴 때에 님들은 진정으로 자신을, 타인을, 세상을 제대로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타인을, 세상을 제대로 보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혹여, 어떤 분이 의문을 내어서
‘사랑을 알았지만 그래서 사랑해야하지 않습니까?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묻는 분이 있으실까 해서 뒷말을 씁니다.
예수가 부활하시고 난 뒤에
제자들을 각지로 보낼 때에 제자가 물었습니다.
“주여, 그곳에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그 말에 예수는
“가라, 가서 만나면 입이 열릴 것이다.”
라구요....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오래도록 모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을 알아들었지만
스스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었지요.
그것을 알고 있는 예수가 스스로에게 이미 모든 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냥 흘러가서
밥 먹고, 일하고, 쉬고, 자고, 때론 싸우고, 때론 웃고, 때론 미워하고, 때론 화해하는
그러한 물건들(인간들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진정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을, 타인을,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을 때에 진정한 사랑에 대한 입이 열릴 것입니다.
입이 열린다고 해서 진정한 사랑의 어떤 모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때에 사랑의 삶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흐르는 존재임을 먼저 아십시오.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렇게 나오는 것이지
이름을 빌려 나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사랑의 삶.....
지지고 뽂으며 사는 삶, 그러한 삶속에 행복한 삶, 그래서 사랑의 삶...*^^*
바로 그러한 삶입니다.
자신이 그렇듯이 세상도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 속에 사랑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특별한 사랑의 행이나 사랑의 행을 위한 방법이라는 것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결국 뭡니까?
어떤 님께서 '웰 컴투 동막골' 의 삶을 평하시며
“잘 먹고 잘 놀면 그것이 천국”
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랑이란 바로 공정한 삶입니다.
내가 그렇게 사는 것처럼 남도 그렇게 산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요.
찌지고 뽂으며 살아가는 삶, 그렇게 잘 먹고 잘 노는 그러한 삶속에 행복한 삶, 그래서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그렇게 공정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 이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스스로 생긴) 모양대로 하라.”
(가라, 가서 만나면 니 모양대로 니 입에서 말이 나올 것이다.ㅋ*^^*)
사랑은 어떤 모습이나 형식이나 이벤트가 없습니다.
그냥 님들 먼저 스스로의 존재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스스로의 존재...
위에서 다 말했습니다.
똑 같이 반복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매 순간 새롭게 흘러가는 스스로의 존재.
우리는 그렇게 삽니다.
그렇게 사는 것을 알면 공정해집니다.
그러면 예수가 말한 것처럼
“가라, 가서 만나면 입이 열릴 것이다.”
그렇게 됩니다.
모든 삶이 그러합니다. 우리는 찰나의 앞도 모르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당하면 다 살아가잖아요?
그것이 바로 예수의 말입니다.
이런 삶에 무슨 옳고 그름이 있겠습니까?
옳고 그름이 없는 것 그것이 공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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