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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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으로는 갈 수 없는 깨달음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661

19-10-10 11:18

본문

가끔 사람들이 내게 이렇게 묻는다.

“선생님의 법문은 다른 법회처럼 법을 직접 가르치기보다 주로 사람의 생각에 이나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중심으로 법을 설명하시는데 그것을 알아 어떻게 깨닫습니까?”

 

사람들은 마치 도(道)가 어디에 있고 우리가 노력이 부족하여 그것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여러 가지 수행이나 사경(寫經) 등을 하며 애쓰고 노력하여 도가 있는 곳을 찾아 얻으려 한다.

 

하지만, 수많은 경전과 어록에서 하나같이 말하고, 또 깨달은 사람들은 반드시 말하는 것이 일체가 모두 본래부처여서 다 깨달아 있음을 말하고, 다만 한 생각 미혹에 빠져 그것을 보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깨닫고 싶다는 그 생각, 일체가 한 법임을 믿고 싶다는 그 마음과 노력이 오히려 자신이 법이요 부처임을 믿지 못하고 있음을 강화시키고 깨닫지 못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스스로 중생임을 잊지 못하게 함을 알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생각과 자신을 분리시키지 못하는 까닭에, 자신 스스로 깨닫고 싶다고 애쓰는 그 마음에 감동하고, 또 자신이 부처임을 믿고 싶다는 그 마음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자신은 누구보다도 이 법을 진지하게 공부하며 깨달음에 목말라 있다고 여긴다.

 

이 모든 것이 다 생각이 꾸며낸 속임수다.

 

그리고 깨달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우리는 본래 깨달아 있어 단 한 번도 이 법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것을 알지 못하는가?

 

그것은 바로 생각이 끝없이 깨달음을 구하면서 자신은 깨닫지 못한 존재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생각의 허구를 말해줌으로써 어느 순간에 문득 이 말에 귀가 열려 생각에 속지 않으면 이미 자신이 깨달아 있고 부처임을 그 순간 깨닫는 것이니, 있지도 않은 도를 찾아 헤매는 것보다 몇 배나 빠르다.

그리고 있지도 않은 도를 찾는 것은 영원히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생각의 허구를 말해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은 우리가 생겨나기 전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몸이 생기고 뇌와 감각기관이 생겨난 후 경험이 쌓여 생긴 것이기 때문에, 비록 잘못된 생각일지라도 우리가 새로운 정보를 배우면 잘못된 생각은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기존의 생각을 고집하지 않고 꾸준히 생각의 허구에 대해 듣고 기존의 생각과 비교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생각에서 벗어나 바로 자신이 부처임을 깨닫게 되니, 생각으로 이해하려 하지 마라.

생각으로 이해하려는 것이 바로 새로운 것을 기존의 생각에 비교하여 기존의 생각에 허락을 받으려는 행위이다.

그리고 깨닫지 못한 사람의 기존의 생각은 당연히 깨닫지 못한 생각이므로, 생각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깨닫지 못한 생각에 허락을 받아 깨달으려는 말도 안 되는 허망한 짓일 뿐이다.

 

그래서 기존의 생각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과 자신을 믿고 받아들이면, 서서히 기존의 생각이 바뀌게 되고 어느 순간에 생각이 멈추면서 매 순간의 세상이 늘 새로운 법 그 자체임을 분명하게 깨닫는다.

그리고 처음 깨달은 사람도 이렇게 기존의 생각에서 벗어나면 보임의 시간이 다른 방법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삶이 빠르게 자유로워진다.

 

실제로 지금까지 즉심선원에 와서 공부하면서 중간에 떠나지 않고 공부한 사람들은 2년을 넘긴 사람이 없다.

​겨우 한두 명이 2년을 지나 3년 안에 깨달았을 뿐 대부분 1년 안에 깨닫는다.

그 이유는 법에 대한 말보다 생각의 잘못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했듯이 이 세상에는 법 아님이 없기 때문에 따로 말할 법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해보라.

어디있는지도 모르고 보이지도 않는 도를 찾는 것이 빠르겠는가? 아니면 자신이 늘 쓰고 있는 생각이 잘못되었고 가리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 더 빠르겠는가?

 

만약 정말로 도가 어디에 따로 있다면, 그것은 절대로 불이법(不二法)이 아니다.

불이법이 무엇인가? 법과 법 아님이 없다는 말이고, 근원과 드러남, 즉 이 한 법과 드러난 만법이 둘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내가 한 생각에 속은 것을 깨닫는 순간 일체가 이 한 법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에 속고 그것에 가려서 이 법을 보지 못할 뿐임을 분명히 안다.

그래서 생각으로 갈 수 없는 그 자리를 일부러 보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각이 허구임을 분명하게 알 때에 개인의 경험으로 쌓은 지식으로 만들거나 가리키는 모든 것이 법 아님을 알게 되고, 그곳은 생각으로 갈 수 없는 자리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생각이 허구임을 알고 벗어난 자리가 바로 생각으로는 절대 갈 수 없는 일체법의 본래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리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절대로 갈 수 없지만, 우리가 매 순간 쓰고 있는 그것임을 분명하게 알게 된다.

 

댓글목록

반야지님의 댓글

내 문제에.  내생각에 걸려  끙끙거리고  있는데  ~~~생각의 속성에  대해  상세히  가르켜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꾸벅

혜광님의 댓글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으니, 있음도 없음도 한 생각일 뿐, 무엇이 따로 있고 없겠습니까?
늘 명쾌한 법문 감사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