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그분이 시키기에 내가 합니다.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1,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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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누가 내게 물었다.
“당신은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
나는 대답했다.
“그분이 시키기 때문에요.”
그는 다시 내게 물었다.
“그분이 누구입니까?”
나는 다시 대답했다."
“그분은 바로 나입니다.”
그는 의아한 듯이 내게 물었다.
“그분이 바로 당신이라면 왜 그분이라고 하십니까?”
나는 다시 대답했다.
“그분은 내게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신에게도 늘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내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분은 한 번도 나를 떠난 적이 없고
당신에게서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그분은 언제나 우리에게 당신의 것을 각자의 모습에 맞도록 줍니다.
그것도 자신의 것을 떼어서 조금씩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받아서 우리의 모습으로 만들어갈 뿐이지요.
그래서 그분은 바로 나이고 또한 당신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분이라고 하면서도
그분이 또한 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또한 그분이 당신이라고 해도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모두와 함께 합니다.
그래서 또한 나라고 해도 되고, 당신이라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기 때문에 또한 이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내가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시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것이기 때문에 어떤 존재도 당신 바깥에 두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름하여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십시오.
설사 나와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설사 상대가 모른다고 해서,
상대의 앎과 능력을 저울질하려고 하지 마시고
보이는 색깔과 표현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그에게서 등을 돌리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그분에게서 받은 것을 스스로의 색깔로 만들어간 것뿐입니다.
당신이 그렇게 만들며 세상을 살아온 것처럼 말입니다.
정말로 그분의 사랑을 세상에 이루기 위해서 가려야 한다면 기다리시오.
예수님 말씀처럼 ‘가라지’는 벼가 자란 후에 저절로 걸러집니다.
그렇게 그때에 가서 가리십시오.
그래도 늦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그것까지 다 받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부처님을 통해서 앙굴리말라를 본래모습으로 돌아오게 하였고,
또
예수님의 입을 빌어서 자신의 몸에 창을 찌르고 자신의 옷을 내기로 나눠가지는 그들을 향해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저가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라고 우리에게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요.
당신이 그분과 하나라는 것을 알기만 하면
부처님께서 그러하시고 예수님이 그렇게 이야기 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할 것이며,
당신 역시 그런 때가 되면 부처님과 예수님과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부처님께서 앙굴리말라에게 하신 것과 또 외도가 와서 제 의견을 함부로 말해도 침묵하시고, 또 등 뒤에서 누가 때릴 때에,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으셨으며,
그것에 대해 제자가 왜 가만히 계시느냐고 물었을 때에,
‘내 등에 나뭇가지가 떨어진다고 해서 그것을 때려야 하겠느냐? 그와는 그와 같이 인연이 된 것일 뿐이다.’
하고 대답하신 것과
예수께서 젯세마니 언덕에서 피땀을 흘리면서 괴로워하면서
‘주여, 할 수만 있다면 제게서 이 잔을 물리소서. 하지만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십시오.’
라고 한 말이 인간적 고뇌를 이야기하려 해서도 아니요.
자신의 자비를 보여주기 위함도 아니요,
후세에 모범을 보이기 위해 하신 것도 아닌,
일체의 모든 일이 다 그분이 하고 우리에게도 역시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부처님도 예수님은 그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바로 부처요, 예수요, 님이요 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한 존재요,
그분이 나를 나 또한 그분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처님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예수님까지 예를 든다고 해서 불교와 기독교를 가르지 마십시오.
일체가 한 법인 그분입니다.
이 한 법인 그분이 부처님도 내고 예수님도 내고, 당신도 내고 나도 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엔 범부도 없고 성인도 없고, 중생도 없고 부처도 없고,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없고,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없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고, 옳고 그름도, 크고 작음도, 사랑스러운 것도 미운 것도 없으며 오직 그것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일러 우리는 한 법이라고 합니다.
그 한 법의 이름이 바로 부처님이요, 예수님이요, 당신의 이름이요 나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이 한 법에는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어 텅 비었다, 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한 법이라는 그분은 텅 비어 공하고 적적하지만 단 한 번도 깨어있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다른 이름이 진공묘유(眞空妙有)요, 공적영지(空寂靈知)요, 성성적적(惺惺寂寂)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그분이 시키기에 세상에 났고 이렇게 합니다.
우리는 그 분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고
그분 역시 우리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체가 한 법이요 우리가 바로 부처요, 예수요 이 한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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