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법을 공부하는 것은 깨닫기 위함이다.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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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닫지 못 했으면서도 법은 잘 설명하는 사람과
법을 공식대로 설명하지 못해도 깨달은 사람의 차이를 운동에 비유하면,
몸이 따라주지 못해 한 번도 등위에 들지 못하였지만 경험이 많아 이론에는 해박한 코치와
이론은 잘 몰라도 자신이 하는 운동에 잘 반응하는 제자의 차이이다.
그래서 이론만 해박한 코치는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못 따지만, 제자는 메달을 딴다.
법에서 메달을 따는 것은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은 매달을 따는 것이지 이론적으로 잘 아는 것이 아니다.
물론 아무리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해도 불립문자라고 말해야 하고 글로도 전해야 한다.
그래서 문자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이 공부이다.
하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이 문자 속이 너무 깊으면
문자가 벌려놓은 알음알이를 마치 깨달음의 길이요 자리인 것처럼 여긴다.
그래서
말 따라 가지말고,
이름 따라 가지말고,
모양 따라 가지말고,
생각 따라 가지말라.
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말과 이름과 모양과 생각을 따라 다니더라도,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렇게 따라다니는 그대들이 그대로 부처요 법이다.
그리고 그것만 알면 곧 따라감을 멈춘다.
물론
그렇다고 그대들이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그대들이 부처요, 법 그 자체이지,
단 한 번도 중생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없음님의 댓글
오랜만에 글을 올리셨네요.
늘 결론은 A=A 입니다.
아프다는 핑게로 방구석에서 뒹굴거리고 있습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뒹굴거리는 것이 법입니다.^^
삐카님의 댓글
착각없이 현실을 현실답게 사는 것 외에
무엇이 달라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