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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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296

20-02-26 15:06

본문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공수래공수거란 누구나 잘 알 듯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말의 뜻은 잘 알지만 그 속의 의미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공수래공수거의 바른 의미는 세상은 늘 변하기 때문에 잡을 것이 아무 것도 없고 잡을 수도 없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손은 태어날 때와 죽을 때에만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늘 비어 있고, 그 빈손위에 삶의 인연에 의해 무엇인가가 얹혔다가 사라지고 또 얹혔다가 사라지며 변해가고, 끝내는 그 인연에 의해 그 손도 함께 사라지면 우리의 생은 끝이 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이 이런 것처럼 세상의 일과 현상 역시 그러하므로 공수래공수거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는 마치 나의 노력으로 무엇인가 얻어 내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리 노력해도 인연이 없으면 한 티끌도 그 빈 손위에 올라오지 않는 것이 이 세상의 법칙이다.

다만, 아무리 빈천하고 또 재수가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평생 동안 그 빈 손위에 아무 것도 올려놓지 못하는 사람이 없고, 또 사람이면 어쩔 수 없이 세상과 인연이 되어 살아가기 때문에, 그러한 삶 속에서 사람들은 마치 자신의 노력으로 손 위에 무엇을 올려놓는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고, 내 손이 마치 그 재물의 운명을 움직이는 것 같아보여도 깊이 들여다보면 내 손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재물의 인연이 내 손을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재물뿐이겠는가?

사랑, 명예, 그리고 사람들 각자가 바라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스쳐간다. 때로는 길게, 때로는 찰나같이 짧게 말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내가 원한다고 바로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다 때가 되어야 하고 설사 내 옆을 지나가더라도 나와 인연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내게 오지 않는다.

그리고 얻고 싶은 마음이 있어 노력도 하고 또 얻을 수도 있겠지만, 내 것이다 싶어 좀 만지다 보면 어느새 인연이 끝나 훌쩍 떠나버린다.

 

세상은 그렇게 끊임없이 이 한 법의 연기 법칙의 인연에 의해 변해가고 이 세상에는 이러한 법칙에서 어떤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여, 내가 아무리 애타게 잡고 싶어도 인연이 없으면 오지 않고 설사 오더라도 그것은 언젠가는 반드시 떠나간다.

그리고 그 떠나는 모습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더 무정하고, 그 순간의 그 무정함은 또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또 욕심이 뒤를 받쳐, 자신이 움켜쥐거나 노력하면 영원히 자기의 노력만큼 또 원하는 만큼 그 모양으로 자신에게 올 거라고 착각을 한다.

그리고 또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노력하면 반드시 얻는다.”라고...

 

하지만 그것이 적성에 맞는 것인지, 자신의 능력에 맞는 것인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고 필요하고 행복을 주는 것인지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선 아주 인색하다.

그런데 그 인색은 그들 대부분 역시 그 앞의 사람들에게 그렇게 배우고 살아와 자신과 세상을 바르게 돌아볼 그런 성찰의 주머니가 없기 때문에 그들 역시 어떻게 할 수 없고, 또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슬픈 인색함이다.

 

이런 성찰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라는 것을 얻으려고 아귀다툼을 하고 심지어는 사람도 죽여 가며까지 움켜쥐려고 집착을 하고 욕심을 부린다.

그리곤 인연이 다 되어 떠나는 것을 그냥 놓아주지 않고 원망을 하고, 세상을 보고 외치고, 하늘을 보고 외치고, 어떤 것은 가슴에 품고 평생의 한으로 지니고 살며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기도 한다.

 

부처님께서 심심해서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이치가 이러하기 때문에 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밝힌 가장 큰 도리가 바로 연기(緣起)로, 연기란 인연의 다른 표현이다.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인연을 피할 수는 없다.

이처럼 모든 것이 인연이어서 항상 하는 것이 없어 무상(無常)이요, 나조차도 인연으로 생겨난 것이므로 주체가 없으니 무아(無我)인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

재물과 사랑과 명예,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나도 없다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얻으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사실 세상을 살아가려면 필요하면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노력하는 것 또한 인연을 짓는 것이니까.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많든 적든 우리에게 왔던 것은 반드시 사라지지 평생 한결같은 모습으로 내게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내 몸과 내 생각 역시 그러하다.

내 몸도 태어날 인연이 되어서 태어났고 갈 때가 되면 아무리 애를 써도 갈 수밖에 없는 인연덩어리일 뿐이고, 나아가 이 세상의 모든 것들, 티끌하나까지도 오고감의 인연을 벗어날 수 없다. 이와 같이 내 생각도 어릴 때의 생각과 지금 생각처럼 끊임없이 변한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그 노력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길든 짧든 우리 곁을 스치게 할 수는 있어도, 영원히 잡아 놓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내 몸과 내 생각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애를 써서 우리 곁을 스치게 할 수 있는 그 현상을 보고 마치 세상을 영원히 내가 원하는 대로 잡을 수 있다고 여기고 집착한다면 그는 늘 과거에 살게 되고, 늘 떠나는 현재에서 회한의 몸부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법이 이러함 알고 노력하되 집착을 하지 말고 인연에 맞기면 평생을 마음 편히 살 수가 있다.

그 이유는 평생을 살면서 재물과 사랑, 그리고 좋아하는 것이 하나도 없이 살아간 사람이 없기 때문이고 또, 누구나 죽을 때가 되어야 죽지 때가 되지 않으면 절대로 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 때를 아무도 모를 뿐이지만 말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삶에서 자신과 세상을 욕심을 버리고 바라보고 인연을 따라 살아간다면 그 살아있음은 욕심과 고통의 삶이 아니라 이 한 법에 의해 존재하는 하나의 법 그 자체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모든 괴로움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는 번뇌와 고통 속에 들어가지 않게 된다.

부처님은 새벽별을 통해 이 한 법의 연기 법칙을 깨닫고 모든 고통과 번뇌를 쉬었다.

 

하지만 이치가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머리가 아프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들이 머리가 아픈 이유의 대부분이 인연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욕심 때문에 인연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삶이 힘들다고 반대로 아름다운 말만 하려하고 그런 노래만 부르면서 그런 삶을 바란다.

물론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도 많다.

하지만, 세상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도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이 널리고 널려있다.

 

그런데도 이런 사람들은

아름다운 말만 하고 싶은 그 마음이 오히려

세상의 그러한 것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안의 아름답지 못한 모습들을 쥐어뜯고

세상의 아름답지 못한 것들에 대해

아름답지 못한 말들로 험담을 하는 자료가 된다는 것을 모른다.

 

세상이 아름다운 진정한 이유는 우리가 무엇을 먹었을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몸에 남고, 필요 없는 것은 세상에 돌려주는 것처럼, 우리가 잘하는 것과 잘못하는 것이 인연과 때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새옹지마처럼 알게 모르게 섞여, 내게 필요 없는 것이 다른 곳에 쓰이고 내게 해로운 것 역시 다른 곳에는 이익이 되기 때문이고, 다른 이의 경우 역시 내게 그러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몸에 필요 없는 것을 세상에 돌려줄 때, 그것은 냄새나는 더러운 것으로 나오기에 사람들은 코를 잡는 것처럼, 내게 필요 없는 것이 다른 이에게 필요한 것을 보면 스스로 질투가 나고 화가 나서 문제이지만, 이 세상은 그러한 인연에 의해 내 생각과 다르게 내 몸에 필요 없는 것이 필요한 다른 곳에 흐르게 하여 세상은 조화롭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밝히신 연기법이다.

 

세상은 하나다.

하지만,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음을 나누고는 아름다움만 바라고 추구한다면

그는 아름답지 못함을 피하려하고 하고

그러면 인연에 의해 사라질 수 없는 아름답지 못한 것과 충돌을 일으킬 것이고,

그럴수록 세상은 분열되어 아름답지 못하게 되고

분열된 세상은 아름다움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더 힘든 세상이 된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그렇게 만든다는 사실을 모른다.

아름다움만을 바라는 그 마음이 세상을 분열시켰다는 것을 말이다.

그 모름으로 인해 다시 그 책임을 아름답지 못한 것에 넘기고는,

아름답지 못한 것이 세상에 있기 때문에 아름답지 못하다고 더욱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선지식들은 말한다.

옳고 그름과 있다 없다는 것과 아름다움과 추함에서 벗어나라고...

 

이 한 법의 인연은 옳고 그름, 있다 없다, 아름답다 추하다. 라는 그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은 인연으로 이루어져 있지 우리가 바라는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 법의 성품이 텅 비어 있기 때문에 성품으로 말미암아 나온 것 역시 실체가 없다.

 

그래서 공수래공수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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