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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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탁한 세상을 사는 법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054

20-04-07 11:50

본문

혼탁한 세상을 사는 법.

 

 

세상은 참 혼탁하다.

 

아니, 사람들은 세상이 혼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원한다.

그런 바람으로 수많은 아름다운 말들을 쏟아놓고 공유하고 또 그 공유하는 삶에 스스로 길들어져,

그 많은 아름다운 말들을 서로 나누면 세상이 정말로 아름다워질 것이라고 믿으며 위안을 받으려 한다.

 

하지만 냉혹하게 말하면

“정말 그런가?”

이다.

 

물론, 개중에는 가끔은 그런 맛을 보는 때와 또 그런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또 그런 자들의 증언에 힘입어

더욱 그 아름다운 글과 그것을 맛본 자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는

자신도 그 길을 가고 또 주위의 사람들도 이끌어 그곳을 향해 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런 곳이 있던가?

그것이 영원하던가?

 

나 역시 이 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 그것을 향해

지금 인생의 3분의 2이상을 찾아 헤맸다.

결국은

“없더라....”

였다.

 

가끔은 위안이 되는 일은 있었으나 그것은 ‘영원하지 않더라...’ 였다.

 

더욱이

모두가 무슨 뽕 주사를 맞은 듯 외치니까 따라왔을 뿐,

만나보니

‘아무도 그런 곳에 간 사람이 없더라.’

였고, 잠시 맛본 사람은 있어도

‘그런 세상에서 영원히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라.’

였다.

 

오히려 바닷물을 마시듯,

잠시 갈증을 가신 듯한 착각이 만들어낸 그 느낌이 더욱 갈증을 더해주듯 절망과 좌절 속에서 허망함만 고스란히 되돌아옴을 맛볼 뿐이었다.

 

세상을 잘 보고 냉정하게 깊이 생각해보라.

모든 것은 양변(兩邊)을 가지고 있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기다리고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기다리듯

늘 이쪽과 저쪽이 함께 한다.

삶은 양변을 지니고 있기에 또한 서로 기대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불행, 아니 불행이란 말은 행복이란 말이 없으면 있을 수 없고

행복 역시 불행이란 말이 없으면 있을 수가 없다.

 

이처럼 삶은 서로 영향을 주기에 늘 변하고 잠시도 머물지 않는다.

이것이 절대적 법칙이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이 사실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욕심이 이 절대적 사실을 믿거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사실이 이러한데도

인간은 그런 사실을 욕망으로 포장하여 외면한 채

영원한 무엇이 있다는 상상을 현실로 믿고

그 양변을 가치와 관념과 의미로 포장하여 한쪽만 취하고 반대쪽은 버리고는 영원히 그 속에 있으려 한다.

 

그래서 생사가 생겼다.

바라는 쪽은 생(生 : 삶)이요, 버리고 싶은 쪽은 사(死 : 죽음)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고통과 번뇌의 근원이다.

 

그래서 이러한 고통과 번뇌가 실제로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느 한쪽만 영원히 있다고 착각하고 그것에 집착하여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으려 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히 가지려 하고

실제로 있는 것을 싫다고 보지 않으려 하고

그것으로 도망칠 수 없으면서도 도망치려고 하고

없앨 수 없는데 없애려 하면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세상은 절대로 우리를 간섭하거나 구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그것을 시비하면서 마음에 든다 안 든다 하며

스스로 자기 생각에 구속된 것이다.

 

마치 바람이 부는 가운데 장대를 세워놓고는 장대가 흔들린다고 바람을 탓하는 것과 같다.

 

삶은 바람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한 생각 바꾸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양쪽이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그것은 생사가 아닌 양쪽 다 그 나름대로 의미와 가치가 있는 양변이 된다.

 

그것이 중도이다.

양쪽의 가운데인 중도가 아니라,

이쪽도 중도 저쪽도 중도로 말이다.

즉 오르막도 중도요, 내리막도 중도디/

 

이런 시각으로 보면 세상은 혼탁한 것이 아니라, 변화로 보이고 모든 것이 당연한 일임을 알게 될 것이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지고 늘 담담하고 고요하여 정말로 영원히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는 행복과 자유를 누릴 수가 있다.

 

그리고 이는 세속에서 말하는  오르막과 내리막이 없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세속에서 말하는 오르막과 내리만근 이 한 법의 인연으로 생겨난 그런 상태를 각자의 입맛에서 짜다 달다는 식으로 이름을 붙여놓은 것임을 알고, 더 이상 그런 분별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순신 장군이 말한 유명한 구절이 있지 않은가?

"죽으려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려고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고통을 던지고 행복을 얻으려 하면

오히려 할수록 얻지 못한 고통과 그것을 바라는 애타는 목마름과 싫은 것을 버리려는 것에 맞서는 고통만 끊임없이 일어날 뿐이다.

 

이 세상의 흐름은 인연일 뿐 인간의 바람대로 가거나 멈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변화와 고통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것과 함께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은 모든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늘 담담하고 고요하다.

 

그럴 때 그렇게 없애고 싶은 고통과 번뇌가 씻은 듯 사라질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자유의 길이요 행복의 길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실전에서는 늘 패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은 이런 말이 지식으로는 저장되어 있지만, 실전에서는 어리석게도 그 지식을 쓰기도 전에 욕심으로 만든 칼이 튀어나와 세상과 싸우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욕심이 사라지지 않는데

아무리 좋은 말들을 많이 안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떻게 실제의 삶이 되겠는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자신이 보고 싶은 쪽만 바라보지 말고 그 반대쪽의 보기 싫은 것에 대해서도 눈에서 손을 떼고 정면으로 바라보라

 

그리고

그냥 보지만 말고

그것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어떤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우주의 법칙임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깨달은 자는 그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모든 욕심을 내려놓은 자이다.

심지어 자신까지 내려놓은 자이다.

마음의 한 티끌마저도 버림으로써 영원한 자유와 행복을 얻은 자이다.

 

그래서 인정과 받아들임은 욕심을 줄이는 아주 중요하고 유용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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