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인생에 마지막은 없다.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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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마지막은 없다.
사람들은 절박할 때 만난 인연에게 대체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건다.
그리곤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고 끝나면 보통 이렇게 말한다.
“그것이 마지막 기회였는데...”
과연 그런가?
만약 그런 시절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때를 회상하며 말하는 지금의 그는 누구이며 그의 삶은 무엇인가?
마지막 이후의 삶인가?
아니면 그 새로운 마지막 기회를 다시 잡은 삶인가?
스스로 말했듯이 마지막 기회는 그때 이미 끝나 버렸는데 말이다.
왜 그리 생각을 존중하는가?
매번 속으면서 말이다.
‘맨발의 꿈’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국에서 실업축구 선수인 김신환 감독이 사업의 실패로 구속, 이혼 등으로 삶을 포기하려다 동티모르에 가서 사업을 재기하다가 만난 유소년들과 함께 2006년 일본 히로시마 리베리노 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서 출전한 과정을 드라마 한 영화이다.
김신환 감독이 이끄는 동티모르는 예선도 통과하지 못할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6전 전승이라는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 역시 국내에서 마지막 기회를 다 날리고 도망치듯 건너가
또 처음엔 별로 원치 않는 팀을 억지로 맡아 이룬 결과로,
예기지도 않게 끝나지 않은 인생을 경험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한국에 있는 아들과 통화를 하는데 아들이 이번 시험을 망쳤다고 의기소침하게 말하자 이렇게 말한다.
“야! 괜찮아, 괜찮아! 이번에 못하면 다음에 잘하면 되지, 그리고 또 다음에 못하면 또 그 다음에 , 또 그 다음 다음, 그 다음, 그 다음은 얼마든지 있어, 실망하지 말고 어깨를 펴 임마~^^!”
사람들은 인생이 마치 어떤 정해진 길을 가거나, 한 번 정하고 나면 다른 길이 없는 것처럼 착각을 한다.
그래서 그 가는 길이 막히거나 방해가 되는 일을 만나거나 그 길을 순조롭게 가지 못하면 좌절을 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던져버리는 어리석은 짓까지 한다.
인생은 정해진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장은 길이 정해져 있는 도로가 아니라,
내가 발걸음을 띠면 어느 방향이든지 갈 수 있는 허허 벌판과 같다.
그래서 어떤 쪽이든 자신이 가면 그것이 자신의 길이다.
물론 이미 가던 길이 막혀 방향을 돌리려면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지치고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가던 길에 비해 익숙하지는 않지만, 고개를 돌리면 여전히 산과 들이 있고, 강도 흐르고, 들에 갖가지 풀과 나무와 꽃들이 있다.
늘 가던 길과 모양이 좀 다를 뿐 모든 것이 똑 같이 있다.
사람 사는 곳이 뭐 별 다를 게 있겠는가?
똑같이 있다는 것은 똑같은 모양으로 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다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노래가 있잖은가?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하지만 생각은 익숙하지 않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그 이유는 생각은 늘 아는 놈처럼 행동하고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좋아 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는, 더듬거리고 배우고 묻는 것이 귀찮고 또 자신이 마치 바보가 되는 것 같아 시쳇말로 쪽팔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래 없는 놈이 애를 써서 자신의 것이라고 만들어 놓은 것들이 폭삭 내려앉으니 절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은 자신에게 익숙한 길을 고집하고 그것이 꺾이면 좌절하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이 바라보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한 생각 내려놓고 보면 세상은 늘 그렇게 우리 곁에 있다.
그러니 생각이 짓는 이 바보 같고 쓸데없는 자존심에 속지마라.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망상이다.
우리는 망상에 속지만 않고 숨을 쉬고 있는 한 우리는 늘 새롭게 살아갈 능력과 힘을 가지고 있다.
인생의 마지막은 생각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삶이 끝날 때이다.
바로 그때인 이 몸이 소멸될 때까지는
인생에 마지막이란 없으니 생각에 속지 마라.
그리고 니사르가탓다 마하라지가
“건물이 무너진다고 허공이 무너지랴?”
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의 육체가 소멸한다고 우리의 본래면목인 법이 멸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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