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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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삶을 떠난 자인가?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1,524

20-03-17 15:26

본문

진리(道)는 단 한 번도 우리의 삶을 떠난 적이 없다. 

그리고 우리의 삶 역시 한 번도 진리를 떠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도(道)와 진리는 저 멀리 있고 삶은 여기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누가 삶을 떠난 것일까?

 

삶이란 매 순간 여기 있다.

그리고 진리 역시 매 순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삶보다는

생각이 만들어준 바라는 삶을 늘 그리워하며 산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이 그리워하는 그 삶이 진리요, 그렇게 때문에 그 삶이 여기에 있어야 당연한 것이라고 믿고 그것을 얻으려고 애태우며 산다.

 

정말 그러한가?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곳이 아니고, 나의 노력만으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인연들이 섞여 흘러간다.

지금도 이 세상과 우리의 삶이 우리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라는 바이러스 때문에 평상시와 다르게 엉켜있고, 그것이 국가적으로 또 세계적으로 나아가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이러한 것이 부처님께서 밝힌 세상의 연기(緣起)이다.

 

그리고 연기의 현상들이 어찌 그것만이겠는가?

그 외 지구가 돌기 때문에 밤낮이 있고 또 대기의 움직임이 있어 바람이 불고, 또 지구가 기울어 있어 사계절이 있고, 그것으로 우리의 삶 역시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그날의 날씨가 맑고 흐림에 따라 의해 우리의 감정과 몸의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가?

 

삶이 이러한데 어떻게 내가 생각 한 번 내었다고 이 세상이 다른 모든 환경과 인연과 삶과 상관없이 내 뜻대로 움직여 한다고 생각하고, 세상이 그런 상태로 옮겨가야 그것이 진실한 세상이라고 믿는가?

 

스스로도 좀 부끄럽고 주제 넘는다고 여겨지지 않는가?

 

이러한 세상에서 한번만이라도 진정으로 자신을 버리고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본 적이 있는가?

 

이렇게 물으면 또 사람들은

“그것은 도인들이나 하지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하냐?”

고 되묻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보통사람이라는 것이 마치 무슨 큰 벼슬이라도 되는지 그것을 무기로 삼아 내세우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것이 세상이니, 자신들도 현실의 실제 삶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그리워하는 삶을 사는 것이 더욱 더 현실의 삶이라고 이야기 주장하고 스스로도 그렇게 믿어버린다.

 

그러면서,

“지금 여기 살아라.”

라고 하는 자들을 자신과 다른 대단한 사람,

또는 어떤 사람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여긴다.

그러면서 역시 자신은 정말로 현실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믿고 자신을 정당화시킨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삶은 이 우주 전체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고, 또 그것까지 안 가더라도 주위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을 무시하고 자신만의 생각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세상살이여서,

그 사실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면 반드시 충돌이 일어나게 되고, 그 결과 마음이 불편하거나 힘이 든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세상이 현실이라고 하면서도 왜 충돌과 불편이 함께 오는 그 세상은 인정하지 않은지, 자신이 바라는 것만 바라면서 그것이 다른 이들의 바람과의 충돌로 당연히 따라오는 불편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힘들어하는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좀 이상한 생각들이 아닌가?

물론 나도 이 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는 참으로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안다.

 

우리가 말하는 현실은 내 생각의 현실이고, 내 생각의 현실은 다른 사람의 현실과 분명히 부딪히는데, 그러한 현실이 제대로 된 현실이라고 하면서 행복을 바라고 있으니, 이성적인 생각으로 볼 때에 정말로 어리석은 생각이 아닌가?

 

이처럼 분명히 충돌이 일어날 생각과 삶을 살면서도, 그러한 행복을 바라고 만약 그런 행복이 오지 않으면 자신을 탓하기보다 세상을 원망하고는 자신은 조금도 변할 생각이 없으니, 정말로 행복을 바라기나 하는지 모를 일이다.

 

과연 그들은 현실에 사는가?

 

진리는 항상 현실에 있다.

수많은 경전(經典)과 선각자(先覺者)들이 그렇게 이야기한다.

 

자신이 현실에 살려고 하지 않고,

그렇게 살라고 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현실이 자신이 바라는 삶과 맞지 않는다면서,

그러한 현실은 잘못된 현실이라고 늘 투덜거린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바라는 삶이 현실이 되어야만 된다고 바란다.

그리고 그 바람이 너무나 진해서 마치 그것이 현실인 것처럼 믿어버린다.

그리곤 지금 주어진 자신의 삶에서 떠나

항상 그 믿어버린 있지도 않는 바람의 삶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러면서 자신은 현실을 너무나 철저하게 잘 살고 있는데 세상이 안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누가 삶을 떠난 자인가?

 

매순간 자신이 대하는 삶이 자신의 바람과 멀리 떨어져 있어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는 그 삶이지만, 그 삶이 실제로 존재하는 진실한 삶이기 때문에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늘 지금 여기 있는 그 삶을 사는 자인가?

 

아니면,

늘 직접 눈앞에서 일어나고 자신이 몸소 겪고 있는 실재하는 현실보다 생각의 바람에 속아 그것만이 진실한 삶이라며 애써 자신을 마취시키면서 지금의 현실에서 도망가려는 자인가?

 

우리의 생각이 아무리 현실 같고, 또 그 생각 속에 진시황(秦始皇)의 아방궁(阿房宮)보다 더 화려한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진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

바로 그대 곁에 말이다.

아니 바로 지금 그대의 삶과 감정이 바로 지금의 자신이요, 삶이요, 진리다.

 

진리는 철학적이거나 사람이 지어낸 선과 악, 옳고 그름 등의 현학적인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은 오직 인간 중심의 생각이고 바람일 뿐이다.

개인의 행복은 개인의 욕심이듯, 인간 사회에 제시된 철학적 윤리적 선(善)은 인간의 집단적 욕심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인간만이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서로 인연으로 엮여서 살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생각이 아무리 거룩하고 현학적이라 할지라도 실재하는 것은 지금의 세상처럼, 코로나라는 바이러스 하나 때문에 진리를 설파하는 종교적인 행사도 하지 못하고, 서로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이 현실이 실제로 존재하는 이 순간의 진리다.

 

우리는 그 동안 인간중심의 진리에 길이 들어, 있지도 않는 관념과 바람의 삶이 현실이 실재하는 현실이라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매순간 우리가 접하는 그것이 현실이고, 우리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 현실에서 도망칠 수가 없다.

 

진리(眞理)라는 말은 참된 이치라는 뜻이다.

 

생각 속의 이치가 참되겠는가?

아니면 실제로 우리가 맞닥뜨리고 살아나가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참된 이치이겠는가?

 

비록 자신에게 맞지 않고 그것을 살 때에는 죽을 것 같은 그 삶이지만 지금의 현재의 그대의 삶임을 자각하고 받아들일 때에, 그대는 비로소 생각의 죽음을 경험하고 실재의 삶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는 그 실재의 삶을 받아들이면 생각이 그렇게 두려워하던 일은 정말로 생각의 일일 뿐, 우리에게는 여전히 똑같은 현실이 있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그가 물리적인 생을 마감할 때까지는 생생하게 살아가는 현실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따라 사는 자는 몸은 늘 살아 있으면서도 생각은 실현되지 않는 세상을 살기 때문에 살아도 살아있는 삶을 살지 못하는 죽은 존재다. 그래서 그 삶은 늘 어둡고 갈증에 타는 길을 가는 것이다.

 

 

진리는 늘 우리 곁에 있다.

아니 매순간 우리와 우리의 삶이 그대로 진리 그 자체이다.

마치 방금 그물로 건져 올린 싱싱한 물고기처럼.....

좋고 나쁨은 실재하는 것이 아닌 생각 속의 일이다.

왜냐하면 좋고 나쁜 일이 모든 사람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그렇게 여긴다면 진리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좋고 나쁨은 거의 대부분이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다.

그것이 어찌 진리가 되겠는가?

이 우주는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곳이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밝히신 연기법(緣起法)이요, 법칙과 작용이요, 우리가 매 순간 겪고 살아내는 그 삶이다.

 

자~ 누가 삶을 떠난 자인가?

 

내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한다.

“현실에서 어떻게 그렇게 살수 있냐?”

고...

 

도대체 현실이 무엇인가?

 

자신을 돌아보라.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

그 삶이 자신이 생각하는 삶과는 다르지만, 자신이 실재로 처한 곳으로 직접 살아가야할 삶이 아닌가?

그것이 현실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현질인가?

 

제발, 자신이 바라는 삶은 현재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자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임을 단 한번만이라도 제대로 보라.

과연 누가 진정으로 삶을 떠나고 있고, 진정한 현실이 무엇인지를...

 

생각으로 바라는 그러한 삶은 지금 여기를 떠난 삶이요, 그러한 진리라는 것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로...

 

그러한 것이 만약 존재한다면 그대의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마치 현실을 살지 않으면서 마치 자신이 현실을 산다고 믿는 그 엄청난 거짓과 엄청난 허상으로...

 

물론 그러한 바람이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노력하면 이룰 수는 있다.

그것마저 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오지 않는 삶도 있다.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꿈도 못 꾸냐?”

라고 한다.

 

물론 꿈을 꾸는 것이야 자유인이니 누가 뭐라 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꿈에 우리는 너무 많이 오래 속아왔기 때문에, 그러한 꿈으로 실재하는 삶을 비교하고 폄하하여 힘든 삶에 빠져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지 않는가?

이제는 그러한 삶을 그만 멈추라는 말이다.

 

이제까지 속아 살았으면 할 만큼 했지 않은가?

 

이글을 쓰는 이유는 그러한 어리석은 생각에 현혹이 되어, 오지 않을 미래나 되지 않은 미래, 그리고 그러한 것을 바라는 자신의 생각을 마치 지금의 현실처럼 여기고는 현실에서 도망치는 어리석은 짓은 이제는 그만 멈추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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