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깨달음 그리고 그대가 바라는 것은?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177
관련링크
본문
그대가 깨달음을 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대의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깨달음에 대한 학문을 구하기 위해서인가?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이 물음은 참 중요하다.
아마 누구나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해서 찾아 헤매다 종착점에서 깨달음이라는 거룩한(?) 단어를 듣고 경건한 마음으로 이 길로 들어선다.
물론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도 그냥 머리를 깎거나 수도원에 가거나 신학대학에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속을 깊이 살펴 들어가면 자신이 세밀히 살피지 못해 미처 알지 못해서 그렇지 분명하게 갈등이 있어서 그런 길을 간다.
세상엔 이유가 없는 것을 아무 것도 없으니까.
스스로 물어보라.
물론 깨달음을 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왜? 깨달음을 얻으면 마음의 불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는가?
서울을 가보지 않은 자는 절대로 서울을 모른다.
그리고 깨달음을 구한다는 것은 아직 깨달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깨달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또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깨달음이 마음을 편하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고 또 구하기 시작했는가?
그것을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이렇게 물으면 요즈음 미디어가 발달해서 마치 알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맷 데이먼’,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로빈 윌리엄스’가 열연하는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에서 천재적 수학능력을 가졌지만 자신의 과거에 갇혀 나오지 못하고, 오직 천재적 수학능력으로 세상을 대하는 맷 데이먼의 영화 속 인물인 ‘윌’의 상담을 맡은 로빈 윌리엄스는,
윌이 자신이 대하는 삶에서 자신이 모르거나 때론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는, 자신이 읽은 책에 있는 내용을 천재적인 암기력으로 재생해내어 마치 자신이 그러한 일을 겪었고, 그래서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다 아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말하지만, 정작은 자신은 자신의 과거가 들킬까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고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미술에 대해 물으면 넌 온갖 정보를 다 갖다 댈걸? 미켈란젤로를 예로 들어 볼까?
그에 대해 잘 알 거야 그의 걸작이나, 정치적 야심, 교황과의 관계 성적 본능까지도 알 거야, 그치?
하지만 성 시스티나 성당의 내음이 어떤지는 모를걸? 한 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정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난 봤어...
(중략)
전쟁에 관해 묻는다면 셰익스피어의 명언을 인용할 수도 있겠지 '다시 한 번 돌진하세 친구들이여'라고 하면서. 하지만 넌 상상도 못해 전우가 도움의 눈빛으로 널 바라보며 마지막 숨을 거두는 걸 지켜보는 게 어떤 건지!
(중략)
너 고아지?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고 네가 뭘 느끼고 어떤 앤지 올리버 트위스트만 읽어보면 다 알 수 있을까? 그게 널 다 설명할 수 있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로빈 윌리암스의 말이 다만 영화속 주인공인 윌에 대해서만일까?
사람들은 요리책을 읽거나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배가 부르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세계에 들어가면 마치 자신이 그것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그것을 안다는 착각에 잘 빠진다.
그리고는 그러한 대화를 나누게 되면, 자신의 삶과 상관없이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리고는 마치 자신은 그러한 삶을 사는 것처럼 여긴다.
그러면서도 내면으로는 지식과 같이 되지 않는 자신과 자신의 삶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지는 자신을 보며 또 한 번 두 번 무너진다.
지식과 아는 것은 다르다.
난로를 만지면 뜨겁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 뜨겁다는 느낌은 만지지 않으면 모른다. 그처럼 어느 누구도 경험한 그자신이 아니면 절대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그대들에게 묻는다.
이 글을 보고 있는 그대들 중엔, 오늘 처음 발심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한 달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두 달, 육 개월 일 년, 삼년, 십년, ‘아이고~ 잊어버렸다.’는 세월의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모든 이들에게 묻는다. 그대가 왜 이 길에 들어왔는가? 스스로 자문해보라.
나는 이 길을 오면서 깨달음을 구하는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들은 처음엔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만났을 때의 그들의 모습의 대부분은 학자였다.
깨달음에 대한 학자..... 그래서 내가 알려주는 이야기에, 그들은 내 말을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늘 자신의 학문적 안테나를 세웠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에 삶이 인연이다 보니 어쩌다 그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 그는 여전히 새로운 안테나를 구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깨닫지 못한 자로 깨달음을 구하러 다니고 있었다.
이글을 보고 있는 그대는 다른가?
그대는 왜 이 길로 들어 왔는가? 그리고 처음 들어왔던 그 마음의 진로를 잊지 않고 있는가?
이 강산에, 이 지구에, 깨달음이라는, 그리고 그와 이름을 다르지만, 결국 같은 이유를 가지고, 자신이 간다고 믿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묻는다.
과연 그대가 그렇게 가고 있는가?
다시 묻는다.
그대의 마음에 평안을 얻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깨달음에 대한 학문을 구하기 위해서인가?
다시 묻는다. 그대는 왜 여기에 왔는가?
初發心是變正覺(초발심시변정각 : 처음 먹은 마음이 변하여 바른 깨달음을 이룬다. = 처음 먹은 마음 그대로 바른 깨달음이다.)
그대는 처음 먹은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가?
이 물음은 참으로 중요하다.
반드시 그대 스스로의 마음을 살펴보고 정말 그러한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깨달음의 길은,
시간이 남아서, 학문적 호기심에, 뭔가 있음직해서, 대단해보여서, 거룩해보여서 가는 길이 아니다.
이 길은
간절한 자가 가는 길이다. 물론 그 간절함의 내용은 사람마다 다를지라도...
그 간절함이 아직도 유효한지를 스스로에게 고백하듯이 물어보라.
이것은 그대에게 정말로 중요한 일이다.
- 다음글 깨달음은 절대적 평화다.
- 이전글 마음이 흔들린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