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적천단상

생각은 하되 생각에 의지하지 마라.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490

20-04-27 12:44

본문

생각은 하되 생각에 의지하지 마라. 

 

생각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과거의 기억이 짜 맞춘 것이다.

즉, 바깥의 경계를 기존의 기억이라는 필터로 걸러서 보는 것이 생각이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린아이의 눈을 보면 된다.

어린아이는 세상을 볼 때 호기심으로 바라보지 생각하고 판단하는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린아이는 아직 세상에 대한 기억이 많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을 많이 산 사람의 눈은 호기심의 눈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기억에 물든 생각의 눈이기 때문에 늘 판단의 눈으로 '옳다, 그르다.' 하며 바라본다.

 

이처럼 생각은 실제상황이 아니고 늘 과거의 시각으로, 그것도 오직 자신만의 경험의 시각으로 현재를 비추는 과거의 환영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기억이 다르기 때문에 다 다르게 본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것이 옳다고 믿고, 대부분 자신이 옳은가에 대한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가 옳다고 하지만 어떤 누구도 옳은 사람이 없다. 서로 다른 자기 경험의 기억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생각으로 헤아리는 한계이다.

 

그래서 선현들은 한결같이 생각으로 헤아리지 말라고 하였다.

 

우리의 생각은 이처럼 실제의 세상과 늘 차이가 있고,

또 일체 만법이 인연으로 변해가듯이 우리의 생각 역시 인연으로 변해가지만, 늘 생각의 경험과 그것으로 만든 모양을 중심에 두고 인연을 바라본다.

그래서 실제의 생각의 내용은 끊임없이 변해가면서도 이 생각이라는 놈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으로 자기는 늘 변함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고, 자신을 의심하지 않고 자신과 다르다고 여기면 등을 돌리며 받아들이지 않는다.

 

생각의 이러함을 경계하여 금강경(金剛經) 마지막 사구게(四句偈)에서

“일체의 유위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렇게 볼지어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易如電 應作如是觀)”

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 생각을 쓰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우리의 감각기관은 감각되는 정보를 뇌로 보내고, 뇌는 그것을 받아 처음 보는 정보는 그대로 중요성에 따라 저장하거나 내버려 두거나 하고, 기존의 정보와 비슷한 것은, 기존의 정보에 새로 들어온 정보를 비교 분석하고는 재정리하여서 생각의 내용을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이 끊어지면 이미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육조혜능조사(六祖慧能祖師)께서는 단경(壇經)에서

“만약 한 생각이라도 끊어지면 법신(法身)은 곧 육신(色身)을 떠난다.(若一念斷絶 法身卽是離色身)”

라고 하신 것이다.

 

일체가 이 한 법으로 건립되어 있는데 법신이 떠나면 육신이 온전하겠는가? 존재조차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면 이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래서 ‘딱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생각을 쓰되 생각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육조께서는 앞의 말에 이어서

“생각이 이어지는 가운데에 어떤 법위에도 머묾이 없는 것이다. (念念時中 於一切法上無住)”

라고 하셨다.

 

즉 생각을 쓰되 그것이 지은 모양에 머물지 말라는 말로 곧 생각이 지은 모양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생각을 쓰되 생각이 지은 모양에 의지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은 경험의 집단이지 실제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즉심시불(卽心是佛),

즉 매 순간 인연에 즉하는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매 순간 즉하는 마음이란 생각으로 헤아리지 않고 매 순간 인연을 시비하지 않고 그와 함께하는 마음, 즉 인연에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이 바로 즉심(卽心)이다.

 

사람들은 인연에 즉 한다고 하면 꼭 놓치는 것이 있다.

이 생각이 일어나는 인연과는 함께하는데, 그 인연이 사라져도 그 인연에 대해 지은 생각은 놓지 않고 저장하고는 그 인연과 관계있는 일이 생기면 마치 지금 있다고 여기고 시비의 칼을 드는 것이다.

이것이 생각이라는 놈이 기억을 모아 아상을 만드는 속셈인데 우리는 이것에 늘 속는다.

 

하지만 인연에 즉하는 마음은 잠시도 머물지 않는 인연, 즉 우리가 만나는 인연을 따라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흘러가는 생각을 말한다.

 

이것을 금강경에서는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지금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앞으로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

라고 하였고,

 

달마조사는 무심론(無心論)에서 말하기를

“내가 지금 네가 알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하나하나 너를 위해 설명하여서 네가 진리(眞理)를 얻어 깨치게 하리라.

온종일 본다고 할 것 같으면 보는 것으로 말미암아 보지 않음이니 보는 것은 곧 마음이 없는 것이요,

온종일 들을 것 같으면 듣는 것으로 말미암아 들음이 없으니 듣는 것 역시 마음이 없는 것이요,

온종일 느낄 것 같으면 느끼는 것으로 말미암아 느낌이 없는 것이니 느끼는 것 역시 마음이 없는 것이요,

온종일 알 것 같으면 아는 것으로 앎이 없으니 아는 것 역시 마음이 없는 것이니,

온종일 지어도 짓는 것 역시 지음이 없는 것이니 지음 또한 마음이 없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말하기를 ‘견문각지(見聞覺知)가 모두 무심(無心)이다.’라고 하니라.

(我今恐汝不解 一一爲汝解說 令汝得悟眞理 假如見終日 見由爲無見 見亦無心 聞終日 聞由爲無聞 聞亦無心 覺終日 覺由爲無覺 覺亦無心 知終日 知由爲無知 知亦無心 終日造作 作亦無作 作亦無心 故云 見聞覺知總是無心)”

라고 하였고,

 

황벽(黃蘗)스님은 전심법요(傳心法要)에서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오직 견문각지로 아는 것으로만 행위를 지으나, 도리어 견문각지를 허공에 던져버리면 마음의 길이 끊어져 들어갈 곳이 없느니라.

비록 견문각지로 본래 마음을 인식하지만 본래 마음은 견문각지에 속하지도 않으며 또한 견문각지를 떠나지도 않으니, 다만 견문각지 위에서 견해를 일으키지 말고, 또 견문각지 위에서 생각을 움직이지 말며, 또 견문각지를 떠나서 마음을 찾으려 하지도 말고, 또 견문각지를 버리고 법을 취하려 하지도 말아서, 즉하지도 여의지도 않고 머물지도 집착하지도 않으면 좌우로 자재하여 도량이 아님이 없다.”

(故學道人 唯認見聞覺知 施爲動作 空卻見聞覺知 卽心路絶 無入處 但於見聞覺知處認本心 然本心不屬見聞覺知 亦不離見聞覺知 但莫於見聞覺者上起見解 亦莫於見聞覺知上動念 亦莫離見聞覺知覓心 亦莫捨見聞覺知取法 不卽不離 不住不著 縱橫自在 無非道場)

고 하였으며,

 

전심법요 마지막에 배휴가

“어찌하면 계급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라고 물었을 때 선사는

“종일토록 밥을 먹더라도 일찍이 한 톨의 쌀을 씹은 적이 없고, 온종일 길을 걷더라도 일찍이 한 조각의 땅도 밟은 적이 없는 것과 같으면 이럴 때에 아상(我相)과 인상(人相) 등이 없어, 종일토록 일체의 일을 떠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경계에 미혹되지 않으니 바야흐로 이름을 자재한 사람이라고 한다.

어느 때나 어떤 생각이라도 일체의 모양을 보지 말고 전후 삼제(三際)를 생각하지 마라. 전제(前際)는 가고 없고 금제(今際)는 머물지 않고 후제(後際)는 오지 않았으니 편안하게 앉아 흐름에 맡겨 구속되지 않으면 바야흐로 이름을 해탈이라고 하느니라.”

(問 如何得不落階級 師云 終日喫飯 未曾咬著一粒米 終日行 未曾踏著一片地 與摩時 無人我等相 終日不離一切事 不被諸境惑 方名自在人 更時時念念不見一切相 莫認前後三際 前際無去 今際無住 後際無來 安然端坐 任運不拘 方名解脫)

라고 하였다.

 

사실 우리는 늘 즉심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생각으로 산다.

다만, 헤아리는 이 한 놈이, 흘러가는 생각을 잡고 시비를 하여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하니 거기서 번뇌와 고통이 일어나는 것이니, 생각에 의지한 대가(代價)를 치르는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경전과 어록에서 말하듯이 일어나는 생각에 의지하여 시비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즉심이요, 머물지 않는 마음이요, 생각은 하되 생각에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에 의지한다는 것은 머물지 않는 생각을 그냥 두지 않고 시비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생각은 하되 의지하지 말라는 것은 곧 생각을 시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생각을 시비하지 말라고 하면 아예 생각을 없애려고 하고, 또 그러한 행위를 수행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참으로 미련한 짓이다.

어떻게 하면 생각에 의지하지 않고 헤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첫 번째, 우리는 생각이 끊어질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 옳든 그르든, 좋든 나쁘든 인연이 되면 뇌는 절로 생각을 만들어낸다. 내용은 시비가 있을지 모르지만, 만들어내는 과정은 인연일 뿐, 시비가 개입되지 않는다.

세 번째, 생각은 만법처럼 잠시도 머물지 않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잡고 시비할 땐 이미 지나가고 사라진 허깨비를 잡고 시비하고 있는 것이다.

네 번째, 세 번째의 이유로 머물지 않기 때문에 잡을 수가 없는 허깨비여서 시비한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니다.

다섯 번째, 아주 대단한 착각, 인연으로 일어나는 생각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 그리고 좋은 생각이든 나쁜 생각이든 없애려 하는 것이다.

여섯 번째, 그런데 그것을 없애려는 것 자체가 이미 생각 속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각으로 생각을 어떻게 한다는 자체가 이미 모순이기 때문에 생각에 의지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다.

 

흘려보낸다는 말은 필요하면 쓰고 필요 없으면 그냥 놔둔다는 뜻이다. 즉 어떻게 하려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생각 역시 우리의 삶의 인연을 따라 생기고 사라지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그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하려 하지 않아도 인연이 되면 그 인연을 따라 흘러가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생각을 어떻게 하라고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생각을 고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길들어 있어서 생각, 특히 맘에 안 드는 생각을 자신도 모르게 어떻게 하려고 애를 쓴다.

물론 이런 방법으로 길을 들여 어떤 특정한 생각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것 역시 생각을 시비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없고 모양에서 떠날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에 의지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인연에 맡기고 흘려보내는 것이다.

 

처음에는 과거의 습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생각에 끌려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많이 힘들어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그 생각을 내버려 둬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생각과 씨름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끌려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라고 새로운 습을 쌓아야 한다.

그 방법이 바로 인연에 맡기고 내버려 두는 것이다.

 

그 방법의 처음이 바로 자신도 모르게 끌려간 그 생각을 그냥 놔두는 것이다.

 

즉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끌려가고 또 끌려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냥 놔두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또 혹여 그 생각이 잡혀 있다면 그것을 아는 순간 또 내버려 두면 점점 그 간격이 벌어지면서 어느새 생각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사실 생각 역시 이 한 법의 인연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라는 한 개체가 살아가기 위해 주어진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각기관이 생기고 뇌가 생겨서 바깥의 정보를 뇌는 끊임없이 분석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생각이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진행이 된다.

오죽하면 일초에 칠천 번의 생각을 한다는 말이 있을까?

 

그래서 생각은 본래부터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는 생각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또 신경을 쓰지 않고 그것의 인연에 맡길 수 있다.

 

그 방법이 생각을 흘려보내는 것이고, 금강경(金剛經)과 달마조사(達磨祖師)의 무심론(無心論)과 황벽선사(黃蘗禪師)의 전심법요(傳心法要)에서 말한 것이다.

 

생각은 우리와 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것을 믿고 우리를 전적으로 맡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생각은 하되 생각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