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모든 것이 당연하다.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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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당연하다
신영복교수라는 분이 있다.
2016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분이다.
1968년 군부정권 시절 통일혁명당이라는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형을 받고 20년을 복역하던 중, 군부정치가 끝나갈 무렵인 1988년에 가석방되어 1989초부터 성공회대학교에 출강한 사람이다.
그가 감옥에서 지인(知人)들과 주고받았던 서신들을 모아 책으로 엮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책으로 중등학교의 추천도서이기도 하다.
그가 감옥에서 나와 강단에서 강의를 하던 중 어떤 학생이 물었다.
“교수님께서는 어찌해서 하느님께 행복을 기원하는 것에 대해선 말씀하시지 않으십니까?”
성공회(聖公會)는 16세기 영국의 종교개혁으로 종교로, 로마가톨릭, 개신교와 더불어 그리스도교의 3대 주요 교파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종단의 제도 등이 좀 다를 뿐 성경을 기반으로 한 교리의 핵심은 개신교와 가톨릭과 크게 다름이 없는 종교이기 때문에,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수업 중에 그렇게 묻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자 교수가 말했다.
“자네는 어찌 꼭 우리가 행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에는 우리가 바란다고 다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이웃들과 힘을 모아 어떤 일을 하더라도 때론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있는 것이 세상의 일이네, 그리고 그럴 때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삶이라네."
내가 이 글을 본 것은 우연히 내손에 들어온 책으로 쪽수도 많지 않고 크기도 보통 책의 반 정도의 책으로, 신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아니었는데, 읽은 지가 3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지라 글의 문장은 원본과는 다를지라도 내용은 이런 내용이었음을 분명하게 기억을 한다.
그때 나는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했지만 이글을 읽는 순간
‘아! 이 사람 한 생각 깨달았구나! 그의 20년 옥살이가 참으로 억울하지만 단순히 헛되기만 한 세월이 아니었구나.’
하는 느낌을 강력히 받았었다.
산에는 풀이 돋고 나무뿌리가 흙을 파고 들고, 각종 동물들이 돌아다니고, 그들의 배설물도 곳곳에 떨어져 떨어진 낙엽들과 함께 썩어가기도 하고, 죽은 동물의 시체가 썩어가기도 하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해가 비치고 어둠이 오고, 겨울이 오고, 봄과 여름과 가을이 욌다 가고, 때론 산사태로 일부가 허물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산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산이 있기에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한 것이 산의 삶이다.
때론 행복하고
때론 불행하고
때론 인연을 만나 행복하고
그런 인연과 인연이 끝나 불행하고
때론 인연을 만나 고통 받고
그런 인연과 인연이 끝나 고통이 끝나고.
때론 신나게 달리고 때론 넘어지고
때론 성공하고 때론 실패하고
때론 기쁘고 행복하고 즐겁고
때론 슬프고 외롭고 보고 싶고 힘든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이러하게 산다.
그래서 이러한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러한 것이 우리의 삶이다.
산과 우리가 조금 다를 게 없다.
산이 있기에 그러한 삶들이 당연하듯
내가 있기에 이러한 삶들이 당연하다.
그러한 일이 있어도 산은 여전히 거기 있듯이
이러한 일이 있어도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불행해도 눈이 보이고, 힘들어도 생각을 하고, 행복해도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고통스러워도 웃을 일이 있고 밥은 여전히 소화가 된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우리는 잠자고 일어나고 일하고 손톱과 머리카락은 자라고 소변이 마렵고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코에 티끌이 들어가면 재채기를 한다.
그렇게 살면서 자라고 늙고 언젠가 사라진다.
누구나....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너무나 당연한 삶을, 우리가 원하는 것만 받아들이려하고, 싫은 것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할 때 생겨난다.
신교수는 말한다.
“그대는 어찌 꼭 행복해야 하고 목표를 향해 노력했다고 꼭 그곳에 닿아야 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행복은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었을 때 얻은 행복보다, 아무리 바라고 원해도 이룰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일 때 더 오래 간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늘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이라는 곳은 내가 원하는 일이 다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고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더 많은 곳이기 때문이고, 그러한 여러 현상 속을 걸어가는 것이 이름하여 ‘삶’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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