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진시황과 맹강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620
관련링크
본문
진나라 시황제때에 만리장성을 쌓았다.
진나라 법에 만리장성을 쌓는 노역에 진나라 백성들의 한 가족에서 한 사람만 노역에 종사하고 그 종사기간도 30일을 넘지 못하게 했다.
시황제는 자신의 나라의 인력으로 볼 때 그러한 법만으로 충분할 줄 알았다. 그래서 장성이 축조되는 진행을 보면서 계속 장성을 쌓아 나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장성의 규모가 어마어마했었기에 법으로 정해져있는 기간의 노역만으로는
인원이 충당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관리들은 시황제의 법보다는 시황제의 바람이 두려워 법을 어기면서 백성들의 노역기간을 늘리고 노역 인원도 한집에 한 사람이 아니라 힘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노역장으로 끌고 가서 일을 시켰다.
그래서 한 사람이 몇 년씩이나 노역을 하면서도 집에 돌아가지 못했고, 또 한 집에 삼대(아버지, 아들, 손자)가 함께 노역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맹강은 그러한 노역에 끌려간 남편 범기량의 아내였다.
맹강은 몇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서 남편에게 줄 솜옷 한 벌을 등에 지고 몇천리나 되는 길을 떠나 장성을 향해 길을 떠났다.
맹강은 장성에 도착하여 장성의 한 끝에서 다른 끝까지 찾아갔건만 남편 범기량을 만나지 못했다.
장성의 끝에서 순수(巡狩)를 나온 시황제를 만났다.
시황제는 우연하게 맹강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녀를 만났을 때엔 이미 그녀의 남편인 범기량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만난 여인이 맹강이라는 것을 알고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여기에 왜 왔느냐?"
"저는 노역을 나간 남편을 찾아 왔습니다."
시황제는 이미 범기량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다시 물었다.
"만일 내가 너에게 찾지 말고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가겠느냐?"
그녀는 대답했다.
"남편은 내 생명과 같으니 그를 찾지 못하면 나는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자 시황제는 다시 말했다.
"너는 이미 장성의 끝까지 왔다. 이제는 어떻게 할 것이냐?"
"여기서도 만나지 못하면 다시 저쪽 끝까지 가야지요."
그러자, 시황제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너는 그곳에 가도 그를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의아한 눈으로 보는 그녀에게 다시 말했다.
"너의 남편 범기량은 이미 죽었다고 들었다."
"그럼 저는 이제 살 이유가 없습니다."
돌아서면서 맹강은 물었다.
"황상은 왜 장성을 쌓습니까?"
"진나라를 위해서다. 장성이 있고 도로가 통일되면 나라가 분열이 되지 않고 안전하게 될 것이다."
그러자 맹강은 대답했다.
"황상이 쌓고자한 장성 때문에 저는 남편과 분리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장성 아래로 몸을 던졌다.
시황제는 그녀의 시신을 신하들에게 따뜻하게 묻어주라고 했다.
............................................................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각자의 이유로 각자가 다른 생각으로 각자의 가치를 가지고 그곳을 향해 나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로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고 싸우기도 하고 또는 같은 생각을 가졌다고 사랑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하지만, 인구만큼이나 많은 세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성(본성)을 벗어날 수가 없다.
사람이 만약 자신이 바로 자성임을 안다면, 나아갈 곳이 없다.
장성축조로 남편을 아내에게서 떼어낼 필요도 없다.
또한 평화와 안녕을 찾을 필요도 없다.
우리는 어떤 세계에 살든 우리는 자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 곳이 지옥이든 천상의 세계든 스스로 자성임을 안다면 그가 살고 있는 그 곳이 바로 자신의 세계요 우주이다.
의식의 진동을 높여 비록 육신을 가지고 다른 단계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그 곳 역시 자성의 손바닥 안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존재이다.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이유로 나그네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고 자신을 보호할 무엇을 만들어야 한다.
지옥이면 지옥에서, 세간이면 세간에서, 또 천상이면 천상에서,
그것의 상황이 아름답든 추하든...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자성이라 하더라도 이미 우리는 이곳에 태어나 이곳에서 산다. 그리고 이곳의 상황에 맞는 옷을 입고 태어났다.
여기를 버리고 어디로 가랴?
생각의 차이.....
맹강과 진시황제의 생각의 차이....
그들이 만약 스스로 자성임을 안다면 그러한 생각의 차이가 일어날 것인가?
또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것을 배척하고 자신의 것만 고집할 것인가?
죽은 맹강을 보는 시황제의 마음이 아팠다.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중국 최초의 통일 황제였지만, 자신의 왕국의 권력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한 아낙네의 죽음 앞에서 한 인간으로 마음이 아팠다.
이 순간 그는 자신의 꿈도 야망도 사라지고 그녀의 죽음이 아팠던 것이다.
그래서 천하의 황제가 촌부인 맹강에게 마음이 서린 대화를 했고 그녀가 죽었을 때에 아랫사람을 시켜서 묻어주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그러한 마음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이다.
그러나
있지도 않는 어떤 곳을 떠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그러한 마음을 잊어 버렸다. 시황제 역시 그러하였다. 그러나 맹강을 만나서 잠시 자신 속에 있는 그 마음을 일으킨 것이다. 물론 그리곤 다시 자신의 관념 속으로 들어 가버렸지만....
매 순간 존재하는 당신이 바로 진실이다. 또 그렇게 매 순간 존재하는 당신의 주위가 바로 진실이다.
내가 사람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주를 횡단하고, 빛의 속도로 우리의 의식을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내가 살아가는 곳은 바로 여기이다.
그리고 여기라고해서 자성(본성)이 떠난 곳이 아니다.
내가 그러한 경지를 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자성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서방 극락정토가 저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성이 있는 곳이 바로 서방극락정토이다. 내가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 매순간 지금 여기가 바로 그 곳이요 나와 함께 삼라만상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그 자리가 바로 그곳이다.
누가 말했다.
"물론, 이러한 세계도 우리의 본래 모습에 비하면 한낮 미망의 세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옷을 입고 살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매순간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리고 나만 그러한 모습을 지닌 것이 아니라, 삼라만상이 모두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고,
그 모습은 천양지차로 다양하나 뿌리(본성)는 하나이다.
그 뿌리에서 바라본다면 지옥이니, 천상이니, 우주 넘어니.... 하는 그 모든 것들은 결국에는 우리의 관념이 만들어낸 하나의 꿈일 뿐이고 그 꿈속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곳이 꿈이라면,
그 꿈속에 지금 나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매순간 여기가 바로 내 삶터요 진실이다.
나(본성)의 드러난 형상과 생각이 다할 때까지...
그리고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의 모습을 사랑한다.
- 다음글 구하지 마라.(수정판)
- 이전글 여법(如法)
댓글목록
수냐타님의 댓글
수냐타 13.07.23. 09:33
꿈속이 분명하다면 굳이 또 꿈을 버릴 이유가 없겠지요^^ 꿈을 꿈임을 알고 진실하게 살고자 합니다. 뿌리를 튼튼히 박아 바람에 흔들림이 없는 그날까지 수행아닌 수행으로~~ ^^
윤기붕님의 댓글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꿈인 줄 알아도 우리가 발 디딘 곳이 꿈 속이라면 꿈인 줄 알고 살아가는 이 꿈 속이 우리의 진실한 삶터이지요.
허상이 허상을 허상인 줄 알고 서로 사랑하며 사는 곳,
그곳이 우리의 참 삶터입니다.*^^*
반야지님의 댓글
꿈속여행 즐겨야죠~~
윤기붕님의 댓글
그럼요.^^
꿈에 매몰되지만 않으면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과 삶입니다.*^^*
우페카 님의 댓글
어릴적 자주 꾸는 꿈을 꿀때 , (예컨대 높은곳에서 떨어지는꿈, 보물덩어리로 메워진 구덩이를 파는꿈등)
'이건 꿈이니 즐기자랄지, 보물덩어리를 어떻게든 꼭쥐고 꿈에서 깨어보자는 노력을 하는것과 같은 경험이 저만의 경험은 아닌것 같더라구요.
꿈이 꿈임을 알고 대응하면,
낭떨어지에서 떨어지는 악몽도 즐거운 놀이로,
갖은 방법으로 꿈속의 보화를 생시로 가져오려는 헛된 노력이 허사임을 알게되어
헛된 애를 쓰지 않게 되는 작은 깨달음을 얻게 된적이 있었지요.
윤기붕 님의 댓글
*^^*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꿈이 꿈임을 아는 삶..^^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