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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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또 다른 자유를 선사한다.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737

14-11-05 13:11

본문

 

"용서는 또 다른 자유를 선사한다.
바로 나에게..
아버지는 나를 위해서 용서를 구하신 것이었다."

영화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의 마지막 즈음에 주인공의 아버지의 임종에서 독백하는 말이다.
 
이글은 영화 '호세마리아 신부의 길'을 알리려는 것이 아니어서 영화의 소개는 하지 않을 것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좋은 영화이고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신부와 그의 친구이자 주인공의 아버지의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많은 의미와 생각할 것을 던져주는 영화로 
한편으로는 마음을 치유해주는 영화이면서 구성과 전개가 탄탄하여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꼭 보시기를 추천한다.

 

각설하고....

 

용서는 받아들임이다.
그리고 받아들일 때 용서란 세속적인 의미도 사라진다.

 

아무리 큰 고통과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겨
평생을 잊지 못할 한을 남긴 인연과 사건이 있었다 하더라도

진정으로 마음으로 받아 들이면
그 일은 그저 
그런 인연이 있었고
그런 사건이 있었을 뿐이다.

 

세상의 일은 삶을 사는 존재에게는 누구에게나 한 두번쯤 일어나는 충격적인 일들이 일어난다.

문제는 누구나에게 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고
누구나 사랑을 하고 또 실연도 하고
누구나 꿈을 꾸고 또 실패도 하고
누구나 아프기도 하고 또 낫기도 하고...

그렇게 누구나 인생의 쓴 맛과 단 맛을 보며 산다.
그리고 결국 누구나 죽는다.
이 많은 일들을 한 번도 겪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에게...

 

왜일까?
이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태어난 존재는 인연을 만나고 인연은 나 혼자의 것이 아니니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되고
결국 
태어난 존재는 
각자가 아무리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도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 진리이다.

 

이것을 받아 들일 때 남을 배려하는 용서가 아니라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고
삶의 문제를 한 인간에게만 책임 지우기에는 너무나 많은 요인과 인연들 속에 우리가 노출되어 있음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한 삶이 너무나 당연함을 깨달을 수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인생의 모든 일들은 그저
그러한 인연이 태어났고
그러한 인연으로 살아가며
그러한 인연을 만나
그러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한 사건의 연속이 하나의 삶이요.
그 하나의 삶이 수 없이 많은 통로로 서로 엮여져 있어 세상이, 우주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는 그 사실을 받아 들일 때 얻어지는것이다.

 

영화의 주인공이

 

"용서는 또 다른 자유를 선사한다.
바로 나에게"

 

라고 말한 것처럼...

 

용서는 상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내 감정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이 받아들임이다.

그것이 자신에게도 향한다면
그야말로 안팎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태어난 존재는 인연의 존재여서 절대로 완전하거나 완벽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자유는 완전한 상태에 이르러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받아 들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댓글목록

산호초님의 댓글


멋진 말씀 고맙습니다

윤기붕 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편안한 저녁 되십시오 *^^*

이할배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조졸님의 댓글


코메디언의 말중에 재밌는 말.
1.어쩔수가 없어.
2.어쩔겨'
고로 코메디언은 깨달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