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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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과 세간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905

14-12-03 17:45

본문

 

깨달음과 세간

 

비유하건데 
깨달음을 밥짓는 것에 비유하자면
세간은 밥을 어떻게 먹는가 하는 것이다.

 

 

세간을 보는 관점이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가 있으니

깨달은 자가 세간을 보는 것은
이미 밥을 지은 후에 어떻게 먹을 것인가 하는 것과 같고


깨닫지 못한 자가 세간을 말함은
아직 밥을 한번도 지은 적도 본 적도 없는 자가 
밥도 없으면서 밥을 어떻게 먹을 것인가 하는 것과 같다.

 

 

깨달은 자는
이미 밥을 지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비벼 먹든, 말아 먹든, 맨 밥을 먹든
자기 마음에 따라 마음대로 요리해 먹을 수 있어 
인연을 거스르건 순응하건 살아가는 삶에 걸림도 없고 시비가 없지만

 

 

깨닫지도 못한 자가
아무리 이렇게 요리를 해야 한다, 저렇게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고민하고 토론한들,
남이 지은 밥에 대한 얘기만 듣고 그에 대한 지식만 쌓았을 뿐
밥을 한번도 직접 본 적도, 만든 적도, 먹은 적도 없으니
어떤 방법으로 요리를 하며 무엇으로 배를 불릴 수가 있겠으며
그것이 또 옳은 요리가 될 것인가?
오히려 그 시비의 먼지가 주위를 더욱 흐릴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삶을 살면서도

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빠져 고민하며
인연에 순응하면 하는대로 거스르면 거스르는대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고통과 번민에 휩싸여 산다.

 

 

깨달음과 알음알이란 바로 이런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무릇 깨달음을 구하려는 자는

먼저 세간과 깨닫지도 못한 깨달음에 대한 시비를 접어두어라.

 

이 자리를 깨닫고 분별이 완전히 사라지면 요리법은 절로 나올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은 직접 맞닥뜨려 사무쳐 아는 것이지
머리로 자성이 어떻고 불성이 어떻고 깨달음이 어떻다고 이해하고 알아 밝혀지는 자리가 아니다.

 

 

아무리 머리로 생각으로 다가간들
스스로는 뭔가 많이 아는 것 같고, 수많은 지식을 담고 있는 같으나 그것은 그저 알음 알이 일뿐,
실제로는 마음속에 가시를 품고 있는 것처럼 늘 답답하고 불안할 뿐이다.
오히려 그 많은 알음 알이는 이 자리를 밝히는데 방해가 되면 되었지
도무지 썩은 나무와 같고 불꺼진 등과 같아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이 자리를 밝혀 세간을 바르게 보고 살려면
먼저 그 안다는 마음을 놓고 시비를 그치고 이 자리와 직접 맞닥뜨려라.

그러면 깨달음과 세간이 둘이 아님을 확연히 알 것이다.
그리고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도 그러함을 알 것이다.

 

삼라만상이 본래부터 깨닫지 않은 것이 없는데 
깨달음이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이 있어

온갖 지식이 필요하고 안다고 할 것이 있으며

또 따로 배울 것이 있겠는가? 

 

 

댓글목록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법문 감사합니다.

조나단님의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