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윤리의식에서 벗어나라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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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만약 사람에게 윤리의식이라는 것이 없고 또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흉악한 사람이고 제 맘대로 하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전혀 윤리의식이 없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어쨌든 자신이 편하게 해석할 지라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윤리의식과 남의 시선을 의식 한다는 것이 남을 배려하는 차원으로 승화되어 사회가 안정적으로 되는데 기여는 한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잣대와 비교로 변해 자신을 가장 괴롭히고 정죄하는 감옥이 되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 즉 자성을 보는데 결정적인 방해 벽을 만들고 있다.
신수의 게송을 본 오조 홍인이 신수한테 말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조홍인조사가 제자에게 의발을 물려줄 때가 되었음을 알고 제자들을 불러 모아 각자 게송 하나씩 지어오라고 하였다.
하지만 아무도 게송을 짓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 홍인의 제자 중 신수라는 중이 다른 대중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사(敎授師)였고 상좌였기 때문에, 다들 신수가 법을 이어 받으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신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하나의 게송을 지었다.
그리고는 스스로도 자신이 없어 밤에 몰래 홍인조사의 방 앞에 있는 삼간 복도 벽에 붙여 놓으니 그 내용이 이러했다.
몸은 보리의 나무요 (身是菩提樹 신시보리수)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 (心如明鏡臺 심여명경대)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時時勤拂拭 시시근불식)
티끌과 먼지가 붙지 않게 하라 (莫使有塵矣 막사유진의)
다음 날 그 게송을 본 홍인조사는 대중들에게는 좋은 글이라고 하고는 신수를 불러 말했다.
“범부들이 이 게송에 의지하여 수행을 하면 곧 타락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견해를 가지고 위없는 보리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신수의 게송이 바로 윤리의식을 가지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보고 허물을 털고 닦으려는 것이다.
그처럼 윤리의식의 잣대를 금과옥조처럼 들고 있거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는 한 결코 자성을 보지 못한다.
윤리라는 것은 인간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즉, 인간이 인간 상호간에 서로 지키고 배려하는 기준이나 암묵적 약속 같은 것이 윤리이다.
그래서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노력의 도리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윤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을 기르는 가축에 비유하기도 하여 비하하기도 한다.
그러니 인간의 윤리를
기르는 가축이나 애완동물이 지킬 수가 있고,
또 그들에게 적용시킬 수가 있으며
날아다니는 티끌이나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것에 다 적용시킬 수가 있겠는가?
불법에는 일체의 모든 것이 불성을 여의지 않았고 모든 것이 부처라고 하는데 말이다.
진리는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그 어떤 것들에도 딱 들어맞는 법이어야 진리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부를 한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불교나 깨달음이 마치 인간의 기준으로 만들어낸 윤리를 지키는 속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는 그 속에 갇혀 나올 줄을 모른다.
불경에서 바르다, 선하다. 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것을 사람들은 세간적이고 윤리적인 입장에서 해석을 하고는
바르지 않음에 반대되는 바름,
악에 대해 반대되는 선함을 이야기한다고 착각을 한다.
경에서 말하는 바름이나 선함은
바름과 그름이 있어서, 선함과 악함이 있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생각이 끊임없이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그것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하나로 보라고 말한 것이며,
그 하나를 보는 시각을 바름이나 선함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바름과 그름을 떠난 것을 바름이라 하고
선함과 악함을 떠난 것을 일러 선함이라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불이법(不二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어 세상을 하나로 볼 때에 비로소 모든 시비가 사라지고
인간이 만든 윤리보다 더욱 뛰어난 법인 진리 속에 살아가게 된다.
그것을 일러 무상보리(無上菩提, 위없는 깨달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또 세간과 출세간을 모두 뛰어 넘으라고 하는 것이다.
세간적이고 윤리적인 해석에 속지마라.
물론 윤리의식을 버리고 남을 배려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을 듣고는
“아! 윤리의식 따위는 던져버려도 되는구나, 내 욕심대로 내 맘대로 살아도 되는구나.”
하고는 자신의 탐욕대로 산다면
그는 더욱 심한 분별망상에 빠져버릴 것이다.
조사들은 말한다.
“선도 행하지 말라는데 악은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라고 말이다.
윤리의식을 벗어나라는 말은 그것에 갇히지 말라는 말이다.
그래도 인간들 사회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가능하면 지키고 또 지킬수록 사회는 아름답다.
하지만 인간 역시 우주의 법칙을 따르는 존재여서 인간이 만든 윤리의 법칙을 늘 거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의 문제는 그냥 그대로 보는 눈을 가지고,
자신도 지키지 못했을 때에도 있는 그대로 보는 눈을 가져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윤리는 인간들끼리 잘 살기 위해 인간세계에만 적용되는 하나의 질서이자, 인간이 조작한 것이지 그것이 우주의 모두에게 적용되는 표본적 진리가 아니다.
생각해보라, 우주 삼라만상에서 우주 변방의 아주 작은 별인 지구에 사는 인간들이 정한 규칙이 어찌 우주의 진리가 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어리석은 생각과 꿈에서 깨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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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조졸님의 댓글
그래서 세상에서 진리는 이단이 되었군요.
조나단 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잘 들어가셨네요.
편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