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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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과 믿음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232

15-03-07 02:52

본문

의심과 믿음

 

미국 드라마 CSI 시즌 2의 2편을 보면

자퇴를 한 어떤 여대생이 비 오는 날 기숙사를 비워주고 콜택시를 불렀는데 택시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었다.

실종사건이 되어 신고가 들어오고 수사를 하게 되었다.

여대생의 부모는 딸과 자신들의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가출은 아니고 반드시 무슨 일이 일어났으니 꼭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여러 가지로 수사를 했지만, 용의선상에 오른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단서도 없고 진전이 되지 않으며

뭔가 풀린다 싶으면 다음 단계에서 막혀버리길 여러 번 했다.

그러다가 노숙자의 신고로 사체가 발견되었는데 쓰레기 처리장에서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압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실종사건이 아니라 살인 사건이 되어 수사의 방향을 조정하게 되었고, 부모들은 이제는 범인을 잡아 달라고 애원을 한다.

 

드라마 스토리를 쓰려고 한 것이 아니니 과정은 대충 생략하고,

결론은,

여학생이 있던 기숙사는 사설기숙사인지,

사용하고 나갈 때엔 들어올 때와 똑 같이 복원해놓지 않으면 변상을 해야 하는 기숙사였다.

그래서 이 여학생은 복원을 하고 마무리 청소를 하고는 휴지통을 비우는데, 마침 그 층에 있는 쓰레기 투입구가 고장이 나서 휴지통을 투입구멍에 빠뜨리고 만다.

휴지통도 복원대상이라 변상을 하지 않으려고

그 학생은 비가 오는데도 1층 도로에 있는, 투입구로 내려오는 쓰레기를 모으는 큰 쓰레기통에 빠져버린 휴지통을 건지기 위해, 쓰레기통과 벽 사이로 들어가 쓰레기통 가장자리로 기어올라 휴지통으로 손을 뻗으며 애를 쓰는데, 대형쓰레기통 바닥에 바퀴가 달려 있어서 도로 쪽으로 약간 밀려 나왔다.

그 때 마침 큰 도로에서 기숙사 옆 도로로 차량이 한 대 들어오더니 길가에 세워 놓은 다른 차를 피하기 위해 핸들을 돌리다가 비에 젖은 도로에 미끄러지면서 도로 쪽으로 밀려 나온 대형 쓰레기통을 들이받고 말았다.

어두운 골목인데다 비까지 와서 잘 보이지 않아, 이 사람은 차량과 충돌했다면 세웠을 것인데, 마침 병원에 부인이 산통을 겪고 있는 중이라 바쁜 마음이었고 또 낡고 또 받혀서 웬만해도 별 일없을 것 같은 큰 쓰레기통이라 그냥 지나가버린 것이었다.

 

그 차가 쓰레기통을 들이 받는 바람에 쓰레기통이 벽으로 밀리면서 휴지통을 줍기 위해 쓰레기통에 매달려 벽과의 틈에 있던 여학생은 내장 파열로 즉사하고는 쓰레기통에 떨어졌다.

그래서 쓰레기장에 다른 쓰레기와 압축된 상태로 발견된 것이었다.

 

결국, 결론은 이 사건에는 범인이 없다는 것이었다.

무작위로 일어나는 연관성 없는 일들이 한 곳에 집중되어 일어난 사고로 결론이 난 것이다.

여대생도 차가 와서 그렇게 부딪힐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고, 차량 주인도 어둡고 비 오는 소방도로의 도로변 쓰레기통과 벽 사이에, 그것도 그 시간에, 사람이 쓰레기통에 올라서서 애를 쓰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묘하게 들어맞았던 것이었다.

 

사실은 세상일이 모두 이렇다.

가해자가 있고 피해자가 있는 경우도, 인연법을 깊이깊이 들어가 보면 일체가 모두 연기로 작용할 뿐, 그 속에 어떤 주재자가 없음을 알 수가 있다.

 

어쨌든,

이 소식을 들은 부모들은 CSI에서 범인을 찾아 내지 못하고 자신들의 딸을 잃은 슬픔을 채워줄 만큼 흡족한 보상이 되지 못하니 자신들을 속인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래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지요.”

 

라고 한다. 그리고는 끝내 자신의 바람을 버리지 못하고는,

 

“탐정을 고용해서라도 끝까지 진실을 밝히겠다.”

 

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사실 도를 구하는 사람들이 이 부모들과 한 치도 틀림없이 꼭 같다.

 

선지식들이 누구나 수행이 필요 없고 이 모든 것이 법아님이 없어,

‘다만 바깥으로 따로 찾지만 않으면 그것이 깨달음이다.’

‘찾지 마라. 구하지 마라. 그대가 바로 법이다.’

등등으로 수없이 말하고 조목조목 설명을 해줘도,

자신이 바라는 답이 있으니 선지식의 말에 자신을 완전히 던지지 못한다.

선지식의 말이 맞다 여기면서도,

그 증거가 자신이 바라는 식으로 와야 한다는 막연한 답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믿고 싶어 하면서도 사실은 마음 속 깊이는 믿지 못한다.

 

믿음이 확실하면 더 이상 의심을 하지 않는다. 의심이 끊어지면 다시 구하지 않고, 그냥 살아간다. 그것이 깨달음이다.

 

하지만, 그 여학생의 부모가,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증명해줘도,

누군가가 자신의 딸을 죽였고, 그 대가를 누가 받아야 한다는 자신이 바라는 답이 오지 않으니 수사대의 말이 믿어지지 않는 것처럼,

 

수십 년을 깨달음이라는 것이 있다고 여기고, 또 책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도라는 것이 이러한 것이다. 라는 어떤 모양을 막연하나마 잡고 있는데, 이제 와서

‘아무 것도 없다.’

‘지금 너의 부족한 그 모습 그대로가 바로 부처다.’

‘일체가 법이다.’

‘깨달음은 없다.’

등등으로 자신이 알고 찾고 기대하고 있는 것과 다른 말들을 하니,

아무리 믿고 싶어도, 아니 한 편으로는 믿음이 가더라도, 끝내 마음 한켠에는 수십 년 해왔던 공부와 자신이 막연하나마 옳다고 믿었던 것이 너무 허무하고 너무나 억울한 것이다.

그래서 무엇으로든 보상을 바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쨘~~!(체험)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남에게 들은 그런 모양들...(왜냐하면 자신은 한 번도 그렇게 되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바란다는 것은 모두 남들에게 들은 것밖에 없다.)

 

내가 가끔

‘의심할 때에는 이미 자신도 모르게 답을 쥐고 있다.’

라는 말을 한다.

사실이다.

모르지만, 들은 것이 하도 많으니까, 자신도 모르게 이럴 것이라는 답을 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의심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모르면 모르고 알면 아는 것이지,

모르면서 답을 쥐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망상인 것이다.

그런데 생각은 자신이 망상을 부리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니,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이 쥐고 있는 답이 옳다고 믿는 헛된 믿음에 빠져서 선지식들이 그렇게 안타까워 목이 메도록 이야기해도 믿지를 않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을 해 보라.

자신이 왜 의심을 끊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지...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생각으로 헤아리고 이해해서 믿는 것이 아니다.

그냥 받아들이고 자신을 던져버리는 것이 믿는 것이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믿어버려라.

그것이 바로 백 척의 높은 장대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몸을 던지는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이다.

그리고 공부한 세월을 자신의 이해에 와닿는 것으로 보상받으려 하지마라.

이해라는 것은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데,

아무리 책으로 보고 남에게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해도

한 번도 스스로 깨달아 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경험하지 않은 깨달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이 바로 망상이 아니라면 무엇이 망상이겠는가?

 

그리고 깨달음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절대로...!!!!

깨달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인데,

어찌 자신이 자신의 대상이 되며 이해의 대상이 되겠는가?

 

차라리

선지식의 말이나 법을 의심하지 말고

스스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라.   

그럴 때 비로소 생각이 내려지기 시작한다.

 

 

댓글목록

무석님의 댓글


따끔한 일침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날씨가 꽃샘추위를 안고 있으면서도 호기를 부리는
화창하고 따뜻합니다.
좋은 주말 잘 보내십시오.
서울 법회가 기다려지네요.*^^*

태정이할배 님의 댓글


법문 감사합니다.()

수용님의 댓글


며칠째 이 카페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책도 샀고요. 책을 읽다 단상을 읽다가... 새로운 차원으로 관점이 바뀌는 듯합니다

無事人님의 댓글


믓진 인연이군요...!!^^

법회에 나오시면 더욱 더 좋은데 말입니다...ㅋㅋㅋ

윤기붕님의 댓글


모두가 일대사 인연입니다.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