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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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임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773

14-10-11 23:58

본문

 

보임

내가 붓글씨를 쓰기 시작한 것이 이제 4 ~ 5년 쯤 되었다.
그 동안 열심히 붓을 잡고 노심초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게으름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은 덕분에 이제 글씨의 형상이 잡히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쓰여진 글씨의 모양보다
내 자신을 들여다 볼 때
아직 팔의 힘이 부족하고 여러가지 부족함으로 자유자재로 활달하게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그 정도도 아니고
지금 드러난 내 글씨에 비춰도 글씨에 비해서 내공이 못 미침을 분명히 느낀다.
아직은 글씨를 내 보일만큼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 도리를 깨닫고 홈페이지를 열고 많은 글을 써왔다.
그 글들을 지금 돌이켜 보면
이 도리에 크게 벗어난 것을 발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실,
그 때의 나의 상태와 지금의 나의 상태를 살펴 볼 때에 
같은 글의 내용을 쓸지라도
그때와 지금의 나는 엄청나게 달라져 있음을 본다.

붓글씨에 비유하면
팔에 힘이 붙고 세밀해지고 자유자재로 씀에 있어 두려움과 주저함이 없어진 것과 같은 의미이다.

이 도리를 깨닫는 것은
물론 평생에도 그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어렵다 하지만
이 도리를 알고 그것을 씀에 일체의 분별이 떨어지고 일체의 두려움이 사라지고나서 돌이켜 보면
이 도리를 처음 알았을 때의 상태는 정말로 그저 갓난아이의 상태일 뿐이다.

깨닫는 것은 쉽다.
물론 평생을 이 도리를 아는 것에 바쳐온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이나,
깨닫고 나서 분별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에 서서 돌아보면
깨달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은 시작인지 알게 된다.

 

그래서 이 공부를 하기는 쉬우나 깨닫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깨닫고 나서도 마찬가지이다.

보임을 시작했거나 과정에 있거나 마친 사람들은 대부분 말한다.

"깨닫기는 쉬우나 공부를 마치기는 어렵다."

고...


이 도리를 깨달은 사람들은
자신이 처음 알은 것을 소중히 여기고

그때의 마음을 등불 삼아 마지막 티끌을 소멸해야 한다.
그래서
늘 경계해야 할 것이
마음위에 한 물건도 올라가지 않는 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모든 공부가 끝나는 것임을 아는 것이다.
마음위의 한 물건이라는 것이 바로 분별이다.
그 중에 가장 큰 놈이 '내가 안다'고 하는 놈이다.

비록 붓글씨를 비슷하게 쓸 수 있더라도 스스로 자유롭지 못하면 그것으로 공부를 삼고,
교만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것처럼
비록 이 도리를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서 분별이 남아 있다면 '내가 안다.'는 한 생각은 절대로 일으켜서는 안 되며
생각이란 놈은 제멋대로이니
설사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것에 마음을 두지도 말고 나의 일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여기고

종내, 
깨달음조차도 무거운 짐처럼 여기고
안다는 생각조차 없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될 때까지 
분별을 내려놓으며 경계해야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는 반드시 사이비 마구니가 되어 
남도 속이고 구속하며
자신은 더 없는 구속에서 뒹굴게 될 것이다.

조심하고 조심해야 할 일이다.

 

 

댓글목록

허동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편한 휴일 되십시오.

해탈옹님의 댓글


공부를 해보니 갈수록 아는게 없네요

윤기붕님의 댓글


아는게 없다는 것이 사무치게 되면 생각이 헤아림을 멈출 것입니다.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마음에 한물건도 올라가지 않는 그날까지 조심하고 조심하겠습니다.

최성철 님의 댓글

각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포세인죤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

無事人님의 댓글



_()_

조졸님의 댓글

조졸 15.04.12. 19:45
한없는 여정 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