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인연(因緣)과 인과(因果) - 수정본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3,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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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강도가 집을 털다가 잠을 깬 용감하고 신중안 주인의 방망이에 머리를 한 방 맞고 피를 흘리며 뛰쳐나와 도망가다가 신고를 받은 경찰이 쫓아오면서 쏜 총알을 등에 맞았다. 살아야겠다는 다급한 생각에 엉겁결에 아무 문이나 보이는 대로 박차고 들어갔는데, 하필이면 오래도록 비워 둔 빈집이라, 먼지와 버려진 물건이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박고 넘어지면서 벽에 부딪혔는데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낡은 집 벽에 걸려 있던 액자가 그의 머리위에 떨어져 죽었다면
과연 누가 그를 죽였을까?
답은 하나다. 그 많은 일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큰 하나(죽음)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세간적인 관점에서 의미가 큰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비록 그 의미가 큰 일이 그가 죽는데 결정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결정적인 인연을 만나기위해선 그 과정의 어떤 작은 인연도 배제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많은 일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죽음이 일어난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그 중의 큰 일만 집어서 인과론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했으니까 이렇게 되었다.' 이다.
위에 예를 든 이야기에서 강도를 죽음으로 끝내었으니 마치 인과론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예로
'강도가 가까스로 추적의 발길을 따돌리고는 몸에 피도 나고 도망 오느라 정신이 없고 너무나 피곤하여 잠시 쉬려고 골목 구석에 기대어 앉았는데, 거기에 다른 도둑이 경찰에 쫒기면서 무거워서 버린 돈 다발과 귀금속이 있어서 그것을 주워서 횡재를 했다'
면? 이런 일이 없을 것 같은가?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지도 못할 일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는데...?
내 중학교 동창은 야구선수를 했었는데 성인이 되어서 어느 날, 고속도로와 국도가 나란히 가는 길의 국도에서 차를 몰고 운전을 하는데, 고속도로에서 덤프트럭이 중앙분리대를 부딪는 사고를 내면서 그 사고로 분리대에서 떨어져 나간 콘크리트 덩어리가 난데없이 그가 운전하는 국도로 날아와 운전석의 그의 머리에 정통으로 떨어져 사망했다. 그는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다.
이것을 한 단면만 잘라서 보는 인과론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을 설명하려면 하필이면 그날 그 시간에 그 길을 가게 되었으며, 또 그 트럭도 하필이면 그 날 그 시간에 그 고속도로를 가며, 또 사고를 낼 여건들이 하필이면 그 시간에 거기서 일어났는지를 조목조목 따져야 한다. 그 조목조목에서 티끌만한 조건이라도 바뀌면, 그 둘은 사건으로 서로 만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과거에 택시 운전을 할 때 가끔 손님들에게 농담 삼아 인연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손님께서 만약 오늘 아침에 10초라도 일찍 일어나거나 늦게 일어났다면 저를 못 만났을 것입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이이야기를 이해를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에 따라 기분도 다르고 행동도 달라진다. 그러면 모든 과정이 다 바뀌는 것이다. 그리고 또 아침에 그렇게 일어나려면, 그 전날에 일어난 일들이 그 시간에 잠이 들 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심지어 그가 그 시간에 자고 싶은 마음을 낼 수 있는 조건까지도... 그러니 티끌만한 것이라도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지니 나를 못 만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삶의 흐름이다. 모든 것이 갑자기 돌출하지 않는다. 우리가 볼 때엔 갑자기 돌출하는 것도 있는 것 같지만, 우주의 어떤 것도 갑자기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갑자기 되는 것도 갑자기 되기 위한 여건이 성숙해야만 한다. 이렇게 세상은 한두 가지 이유만으로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이 절대 아니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나비효과라는 것이 바로 인연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우주를 그리고 우주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관계를 중중무진법계(重重無盡法界)라고 한다. 이 말은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은 서로 겹치고 겹치며 그 겹치는 인연이 또 서로 겹쳐서 그렇게 겹치는 인연이 끝없이 전개되는 세계라는 말로 횡적, 종적, 상, 하 등, 한 존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존재에 영향을 미치고, 또 그 존재 역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존재에 영향을 미쳐, 그렇게 끝없는 서로에게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즉, 인(因)이 과(果)를 만드는 것(인과론)이 아니라 인(因)과 연(緣)의 만남으로 과(果)가 생기고, 또 그 과가 다시 인과 연이 되어 서로 다른 인과 연을 만나며 끝없이 변하고 펼쳐나가는 것이 이 우주의 삶이기 때문에 중중무진법계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일의 원인이 인과론처럼 딱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끝없이 세상이 만들어지고 변하여 가는 것이 중중무진법계이다. 그래서 세상은 인드라망(그물)처럼 엮여져 있다고 하는 것이다.
세상은 인과론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가 없고 또 존재할 수도 없다. 그리고 거기엔 일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 섞여 있기 때문에 선도 없고 악도 없다. 그래서 부처님도 선지식들도 선도 여의고 악도 여의라고 하는 것이다. 또 어떤 조사는
"선도 버리라고 하는데 악은 말해 무엇 하겠느냐?"
라는 말로 선과 악이라는 윤리관을 버리면 제 맘대로 할 것이라는 중생의 우려스런 생각마저 부숴버린다.
이것만 확실히 알아도 모든 번뇌가 사라진다. 우리가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욕심 없이 주어진 인연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선재동자 시절 가리왕에게 온몸을 갈가리 찢겨도 원망하나 없었던 것도 이 인연법, 즉, 연기법의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내가 있다는 한 생각 때문에 생각을 놓지 않고, 생각이 생각하는 세상을 바라고, 그것을 잡으려고 온갖 아전인수 격인 판단을 하며 자신만의 가치와 의미와 잣대를 만들고는 그에 관계되는 대중적 의미와 관념을 끌어와서는 그것이 마치 세상의 기준이 되는 것처럼 여기고, 그것으로 세상을 판단하고 분별한다.
거기에다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 즉 '착한 일하면 복 받고 악한 일 하면 벌 받는다.' 라는 교육 받은 지식들을 자신의 기준에 믹서를 하여 '세상이 이러면 이렇게 될 것인데 왜 저렇게 되는 거야?' '저놈은 그것도 모르고 저런 일을 해?' 하면서 세상과 바깥, 심지어는 자신에게 조차도 'x신 같은 게 이것밖에 못해?' 하면서 분노를 내 뿜는다.
하지만 세상일을 가만히 보라. 과연 그런가?
더러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실제론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 이유가 세상은 우리의 거친 판단과 시비의 눈으로 보이는 인과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과 판단과 시비의 눈으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중중무진의 인연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강도가 여러 요인으로 죽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이 있다. 그가 강도짓을 하러 갔다는 것이다. 강도짓을 하러 가지 않았다면 설사 그날 죽을 운명이라고(예를 들었을 뿐이다.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은 없다. 인연, 즉 연기법만 있을 뿐이다.) 해도 적어도 그와 같은 일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왜 고통이 일어나고 즐거움이 일어날까? 우리의 삶이 이렇게 펼쳐지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면, 강도가 강도짓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것처럼 우리도 우리와 같은 삶을 겪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삶이 즐겁든 고통스럽든 내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또 다시 인연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강도가 강도짓을 하러 간 것 역시 그가 태어날 때부터 강도가 아니었을 테니, 그가 태어나 자란 환경, 부모의 영향, 교육, 친구의 영향 등을 통해 강도가 된 인연, 그 시간에 강도짓을 하러 간 인연 등을 따지면, 단순히 강도짓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강도짓을 하는 것도 결국 인연이라는 것이다.
그처럼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우리가 태어나고 나지 않고 하는 것 역시 인연에 의해서였지 우리의 의지는 단 한 톨도 개입되지 않았다.
우리가 인연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 날 때, 우리는 어른들이 아이들이 여행갈 때 여행가방을 챙겨 주는 것처럼, 각각의 기본적 성향이 담긴 유전자와 바깥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감각기관과 육체와 받아들인 정보를 분석하고 정리하고 기억할 수 있게끔 프로그램 되어 있는 뇌를 한 묶음으로 여행 가방처럼 부모로부터 받았을 뿐이다. 인연으로 말이다.
그리고는 우리가 만들지도 않은 세상에서 수많은 인연을 만나면서 여행지에서 필요한 것들을 부모님이 챙겨주신 여행가방에서 부모님이 챙겨주신 도구들 중에 골라 꺼내어 쓰듯 부모님으로 받은 우리의 육체와 여러 기능을 통해 견식(見識) 얻고 넓혀 오며 생각을 만들어 지금까지 살아 왔고 또 살아가며 세상에서 육체의 인연이 끝날 때까지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그렇게 도구를 꺼내고 쓰는 것도, 뇌를 통해 넓히는 것 역시 모두 여행가방에 들어 있고 매뉴얼조차 부모님들로부터 받은 것이며, 그렇게 쓰는 작용도 역시 부모님들로 부터 받은 것들이다.
그렇게 받은 것으로 이루어진 것 중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것이 바로 생각이다. 그런데 이 생각은 아주 불효자라서 자신이 온통 부모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조금도 알지 못하고 자신이 다 한 것처럼 착각을 한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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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태정이할배님의 댓글
법문 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글이 중복되고 섞여서 다시 수정하여 올렸습니다.
무석님의 댓글
그냥 살아지는 것이네요. 법문감사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그렇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불안해서 자신이 뭔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모든 일들이 일어난 것이지요.
장연숙님의 댓글
선생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창석(윈드)님의 댓글
법문 감사합니다_() _
윤기붕님의 댓글
네~^^
저도 님들이 계셔서 정말 기쁘고 고맙습니다~*^^*
대덕성님의 댓글
늘. 지금 나의 마음을 비추는 선생님의 말씀에. 행복 합니다
윤기붕님의 댓글
저 역시 고맙습니다. 대덕성님*^^*
나그네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윤기붕 님의 댓글
윤기붕 15.03.09. 10:29
나그네님 좋은 날 되십시오^^
조졸님의 댓글
19줄 바둑판의 변화수만 해도 10의 200승이 넘는다고 책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무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