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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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내가 여기 있을 뿐이다.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540

20-04-29 13:54

본문

그냥 내가 여기 있을 뿐이다.

 

이 홈페이지, 그리고 게시판, 글, 동영상...

무엇이 있든 그냥 내가 여기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보고 있는 여러분들 역시 그냥 이곳을 찾았을 뿐이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하나, 여전히 이 지구 안이고, 이 우주 안이고, 이 법 안이니, 역시 나처럼 그냥 그렇게 여기 있을 뿐이다.

 

물론 좁혀서 내가 여기에 있고 여러분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를 따지자면, 이유야 이 우주를 만들고 남을 만큼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겠지만, 그것을 알려고 아무리 몸부림치고 노력하고 누구처럼 소신공양(燒身供養 : 자신의 몸을 태우는 공양)을 해봐도, 결국 그렇게 찾은 답은 그냥 이라는 것이지 다른 뜻이 없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그냥이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세상의 일을 하나하나 나누어 그 이유를 만들고 의미를 달면 세상은 모든 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게 되고,

그 이유에 합당한 의미가 있게 되고

그 의미가 있는 만큼 우리가 공부해야 할 것도 많아지고,

이해해야 할 것도 많아지고,

이해한 만큼 베풀어야 할 것도 많아지고,

참고 견딜 것도 그만큼 많아질 것이다.

 

우리의 삶이 힘들어진 것도 다 이 때문이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결국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복잡해도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왜?

이 우주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 인연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결국이 한 법의 법칙과 작용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그 법칙과 작용은 인드라망처럼 엮인 인연의 그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함은 자기가 원했던 안 원했던 상관없이 아무도 피해갈 수가 없다.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 한 법으로 태어난 것으로 이 한 법의 법칙과 작용 속에 있을 수밖에 없고, 또 그 법칙과 작용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으로, 기쁨과 슬픔, 얻음과 상실, 행복과 불행, 그 외의 모든 이것과 저것이 함께 존재하는 이 세상과의 인연을 절대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한 개체의 의지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일어날 일은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다.

이런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이 절망할 것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되는 일만, 즉 인연이 되는 일만 되지, 되지 않는 일은 안 된다는 사실에 사람의 욕심은 분명히 절망할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쓸데없는 말이라고 배척하고 화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헛된 일이라 할지라도 애를 써서 얻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물론 조금은 얻어 맛도 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영원히 옆에 둘 수가 없다.

 

개체의 존재 자체도 때가 되면 사라져야 한다. 이것을 비껴가는 존재는 이 우주에 단 하나도 없다.

 

이것이 곧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이 한 법에 의해 그냥 여기에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말에 또 미친 소리니, 무기력한 소리니 하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절망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철저하게 생각의 욕심을 따르지 말고 냉정하게 생각을 해보면 이 말은 절대로 틀린 말이 아니고, 세상은 이 말을 비껴갈 수 없음을 알 것이다.

 

반전은 여기에서 일어난다.

 

그렇게 냉정하게 생각해서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자기의 생각과 욕심을 내려놓고, 이 법계, 즉 이 우주의 모든 삶의 본래 이러함을 받아들이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여겨지고 세상의 모든 일이 그냥 그렇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또 이러한 사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무기력한 사람의 변명쯤으로 듣고는 사람마다 인생마다 특별히 주어진 의미와 뜻이 있다고 우기며 자신의 욕심과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또 그런 삶이 좋은 삶이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가르치고 부추기기도 한다.

사실 세상에 좋은 글과 말은 다 이런 말이다.

가치가 있고 이상적인 글과 말...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한다.

아니, 하려고 한다.

 

해야 해서 하든, 하고 싶어서 하든, 할 수밖에 없어서 하든, 어떻든 간에 우리가 살아있는 이상에는, 어떤 놈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 하라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나에게 또는 나와 인연이 되어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에 충실하도록 부추기고, 특별한 무엇이 있다고 유혹하며 우리에게 개체의 존재 의미, 즉 자아, 또는 자기 정체성을 가지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결국 이 한 법을 깨달아 진실을 알고 보면 그 모든 것이 바로 그냥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일체가 다 이 하나의 일이니까.

어떤 것도 비껴갈 수 없는 이 하나의 일.

 

그냥 내가 여기 있었을 뿐인데 내가 없으면 생기지도 않을 일들이 내가 있어 생겨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나라는 것에 의미를 두고, 내 생각에 의미를 두고, 내 추구함에 의미를 둔다.

 

하지만 그것에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그냥 내가 있으니까 내게 생겨난 건데, 내가 없으면 어떻게 내게 그런 일들이 생겨나겠는가?

 

그런데 이 ‘내가 있으니까’ 하는 이 하나의 말에 양쪽으로 생각이 나뉜다.

 

나에게 의미를 두고 세상의 모든 것을 내 중심으로 바라보는 쪽이 있고, 나에게 의미를 두고 내가 어떻게 생겨났는가의 관계를 바라보는 쪽이 있다.

 

내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쪽에는 내가 의미가 있듯이 세상의 모든 일도 함께 의미가 있게 되고, 그러면 가져야 하고 버려야 되는 생각이 일어나고, 거기서 좋고 나쁨이 일어난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생겨났는가의 관계를 바라보는 쪽에는

나의 탄생의 배경인 부모님과의 인연, 그 부모님의 인연, 그렇게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서 결국 이 한 법을 만난다.

물론 이 한 법이라는 것도 이름이고, 그냥 이 세상을 만들고 움직이는 무엇이라는 것을 만난다.

 

결국 이 한 법이 있고 이 한 법에 따라 세상이 생겨나고, 그 와중에 이 모든 일을 느끼는 자신을 나라고 여기고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그러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결국, 모든 것이 이 한 법의 일이요, 그래서 그냥 그렇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한 법의 일은 그냥 서로 만나면 그 속에서 인연의 무게만큼 다른 일이 일어나는 법칙과 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결국 생(生)도 사(死)도,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선한 것도 악한 것도, 다 그저 이 한 법의 일일 뿐인데, 나라는 한 놈이 자기를 중심에 두고 제게 편하고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고 있을 뿐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좋고 나쁨은 공통의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가 살아온 경험의 잣대로 보고 있음도 알게 된다.

결국 삶은 그저 아주 간단한 이치, 부처님께서 연기법경에서 말씀하신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

는 아주 간단한 법칙과 작용으로 세상이 생기고 흘러감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법칙과 작용은 세상에 사람이 있거나 없거나, 깨달은 부처가 생기거나 안 생기거나, 이 우주가 있거나 없거나 아무 상관 없이 본래부터 그러함을 깨닫게 된다.

 

부처님은 이렇게 깨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깨달은 눈으로 세상을 보니 삶이 아주 간단한데 사람이 전도된 생각으로 욕심을 내니 세상이 복잡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람이 세상이 복잡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결국 이 한 법이 세상을 만들고 나도 만들어 이 세상과 인연 되어 살아가게 하는데, 그중에 사람이라는 특별한 종족이 하나같이 자신이 중심에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세상의 일을 그냥 이 한 법의 인연으로 그렇게 흘러간다고 여기지 않고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어서 일어난다고 느낀다.

그리고는 내가 느끼는 이 세상이니 내가 바라는 그것이 내 생각대로 존재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렇게 자신과 세상의 일을 문제 삼고 때론 오기로 버티기도 한다.

그래서 세상에 생(生)과 사(死), 좋은 것과 나쁜 것, 옳은 것과 그른 것,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생기고 스스로 그 속에 들어가 갖가지 의미를 붙이고 그것의 노예가 되어 산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그냥 인연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일들이 내게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떼를 쓰고 세상에 의미를 붙이고, 가끔 바라던 것을 손에 쥐어도 결국 세상은 그냥 흘러갈 뿐이다.

즉 이 우주의 기나긴 시간이 흘러가는 중의 이 시간에 그냥 내가 여기에 있는 것뿐이다.

그래서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고

그리고 여러분들은 그 인연으로 그냥 여기에 와서 보고 읽고 느끼고...

 

그래서 우리의 본 모습인 이 한 법은 조금도 변함이 없고 어떤 일도 없다.

그냥 그럴 뿐이다.

 

그런데 이 그냥 그럴 뿐인 사실을 단 한 번만 사무치게 깨달으면,

사람들이 무시하듯 말하는 무기력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냥 그럴 뿐인 이 삶이 얼마나 편안하고 아름다운지 알 것이다.

천상병(千祥炳) 시인이 귀천(歸天)이라는 시에서 말한 것처럼.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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