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천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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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와 보살

작성자 : 윤기붕추천수 : 0조회수 : 2,014

20-04-17 19:02

본문

부처와 보살

 

보살은 중생을 구하는 자비로운 존재이다

 

그러나

부처는 중생을 구한다는 마음조차 없다.

 

보살은 중생을 구하는 마음이 있으니 너무나 자비로운데,

부처는 중생을 구한다는 마음조차 없는 존재이니 보살보다 자비심이 없다.

 

그런데도 경전에서는 그런 부처를 높이치고 자비심이 넘치는 보살을 그 아래에 둔다.

 

왜 그럴까?

 

생각의 속성은 늘 대상과 함께 있다.

그리고 만약 대상이 필요한데 마음에 드는 대상이 없으면, 잔인하게도 그 화살을 자신에게 돌이켜 이미 지나간 자기 생각까지도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한 짓거리를 하는 것이 생각이다.

 

그래서 아무리 자비롭고 사랑이 넘치고 대단한 생각이라도, 생각이 있는 이상 늘 대상이 존재한다.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너와 나란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있는 것이요, 그것으로부터 중생상(衆生相)과 수자상(壽者相)도 함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살이 부처의 자리에 못 들어간다.

 

그 스스로는 대상에 끄달리지는 않지만,

구할 중생이 있다는 마음이 있고 그 중생을 위해 자비심을 내려는 마음이 있다.

 

그것이 바로 유위(有爲)이다.

보살은 그 마음 때문에 그것에서 벗어난 존재가 못되고, 불교에서는 보살을 이야기하면서도 부처의 자리에 그들을 안치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부처는 모든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모든 중생을 구한다.

왜?

그에게는 부처와 중생이라는 나눔이 없어 그가 보는 모든 세계는 자신과 똑같은 부처임을 안다.

 

만약 이름하여 중생이 있다 하더라도 그에게 오기만 하면 바로 부처이다.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처임을 안다.

무엇을 따로 할 것이 있겠는가?

 

이것이 무위(無爲)이다.

그래서 그에게 구제된 자들조차 자신이 구제되었다는 생각이 없다.

 

그래서 아무런 따로 할 일이 없고, 그래서 부처는 모두를 부처로 만든다.

 

보살은 함이 있는 마음으로 중생을 제도하지만

 

부처는 함이 없는 마음,

아니 함이 없는 마음조차 없음(無爲)으로 중생을 부처로 만든다.

 

아니, 애초에 중생과 부처가 따로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보살의 자리 위에 있다.

 

금강경 사구게에서 말한다.

“모든 유위의 법은 (一切有爲法)

꿈같고 꼭두각시 같고 거품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如夢幻泡影)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으니 (如露易如電)

마땅히 이렇게 보아야 할 것이니라 (應作如是觀)”

 

그리고 꼭 잊지 말고 알아야 할 것은

나의 이런 말도 부처는 그저 꿈속의 일이라고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선사가 말했다.

“그저 그대의 마음만 밝히면 될 뿐, 내 말을 기억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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