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마의장

체험이야기

긴 꿈에서 깨어나다.

작성자 : 수나타추천수 : 0조회수 : 2,185

15-09-19 19:35

본문

 

내가 깨달음이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30대 후반쯤 어느 시립도서관에서였다.

그 무렵 나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특별활동 독서반을 맡으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도서관을 찾게 된 것이 우연한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 보다 더 앞선 이유는 어릴 적 부터 마음을 닦는 종교생활에 깊이 심취한 집안의 내력이었을 것이다. 나는 진실하고 참된 마음으로 그 공부에 몰입하고 있었는데 그 공부를 더 깊이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 저런 마음공부 관련 책들을 뒤적이곤 하였다.

그러다 우연히 오쇼 라즈니쉬가 번역한 서적을 접하게 되었는데 나는 그 순간 바로 깊이 매료되었다.

그 후론 늘 시간이 날 때 마다 오쇼의 수 많은 책들을 찾아 읽었는데 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뭔가가 있다는 직감을 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깊이 몸담아왔던 나의 종교단체(우리나라 민족 종교의 한 분파)가 그 무렵 내분을 겪게 되면서 종단이 흔들리고 갖가지 추악한 사건에 휘말려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고 그 때와 맞물려 나의 친정의 몰락, 그리고 내 가정에도 각종 어려움이 밀어닥치면서 나는 마음을 둘 곳을 몰랐다. 그 전까진 온실 속의 꽃처럼 세상 어려움을 모르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삶은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린 시절 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신비한 도의 세상, 놀랍고 경이로운 어떤 세상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게 지금의 이 현실의 세간생활을 다소 경박하고 천시하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고 현실에 매달려 사는 삶을 무시하였다. 그리고 나는 언젠가는 이런 시시하고 천박한 현실을 초월한 그 어떤 세계로 넘어갈 것이란 꿈과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와 돌아보면 나는 어쩌면 불만족한 현실을 도피하는 수단으로 그런 초월의 세상을 꿈꾸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릴 적 부터 불교에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었다. 석가세존에 대한 경외감은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지만 현실의 불교종단과 스님들에 대한 부정적인 사례를 너무도 많이 들어 왔던 탓인지 나는 이 공부의 돌파구를 인도의 스승들에게서 찾고자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 그래서 인도의 수많은 스승들에 관한 책들을 섭렵했고 거기 나와 있는 수행법들을 실천했다. 호흡명상, 요가, 만트라, 관법, 주시자공부, 깨어있기등등을 수년간 집중력 있게 실천하였고 그러는 동안 많은 놀라운 체험과 환희지를 경험하였는데 그러한 황홀경의 체험이 점점 더 나를 이공부에 몰입하게 하였고 나는 늘 껍데기만 현실에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어떤 수행단체나 스승도 찾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을 혼자 뚫어 내고자 결심하였다. 예전 종교의 배신과 몰락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었던지 나는 조직이나 단체, 공동체, 종교라는 단어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났다. 스승 아래 조아려 모든 것을 다 바칠 것 같던 사람들도 자신의 이익앞에 서면 헌신짝처럼 돌아설 수 있는 것이 또한 인간의 마음이란 것을 사무치게 배운 나는 두 번 다시 어떤 조직에 가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맹세를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에서 적천 윤기붕 거사님의 홈페이지(be in now)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불교를 직접 접하게 된 계기도 거기에서였다. 나는 불교 경전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적천선생님의 글을 읽는 순간 바로 이 분은 틀림없는 진실을 깨친 분이라는 직감이 들었고 한동안 그 사이트에 몰입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글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더 높고 더 넓은 진정한 '무엇'을 분명하게 알고 싶다는 목마름은 나를 그냥 두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적천 선생님과의 인연을 마무리 하고 또 다시 나의 길을 찾아 떠났다.

 

내가 가장 많이 한 수행으로는 주시자 공부(지켜보기)와 깨어있기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전세계 깨달았다는(특히 서양쪽)분들의 책들과 마음 관련 사이트들을 늘 가까이 하며 살았다. 그리고 자잘한 영적체험은 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지천명을 들어서던 어느 초여름 저녁이었다. 그 날도 혼자 책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한 귀절을 읽다가 놀랍고 경이로운, 완전히 전체를 꿰뚫는 체험을 하였다. 모든 의심은 사라졌고 모든 경전이 하나로 이어졌고 모든 것이 분명했다. 온 우주와 온 세상이 뒤집히는 그 황홀경은 일주일 이상 계속 되었고 환희지는 몇달이 이어졌다.

 

나는 우주의 진실을 분명하게 깨달았고 그 때의 감격과 경이로움은 필설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에도 두려움을 느꼈다. 내가 과연 두 번 다시 앞으로의 남은 삶 동안 흔들리지 않을 것인가 하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우기고 싶었다. 설마.. 이토록 분명하고 이토록 선명한 체험을 한 내가 또 다시 흐려진다는 것은 스스로 용서를 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 날 이세상의 모든 종교와 가르침의 거짓을 분명히 보았다.

 

그러는 동안 적천 선생님과의 인연은 수 년 동안 끊어졌었고 두 번 다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스마트폰의 카스덕분에 우연히 다시 연결이 되었다. 체험 후의 흔들림과 함정과 착각과 어긋날 수 있는 많은 위험을 선생님께서 세세하고 자상하게 짚어 주셨고 그러한 선생님의 지도 덕분에 나의 보임기간은 놀랄만큼 단축되고 빠른 시간안에 굳혀졌다. (사실 나는 체험 그 이후에도 엄청나게 흔들리고 원점으로 돌아온 듯한 자신을 바라보면서 말할 수 없는 좌절과 자괴감에 한동안 고통받았다)

 

선생님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나 혼자 걸어 갔다면 자칫 그 체험을 잡고 그 속에 빠져 현실과 분리될 수 있는 크나큰 위험에 처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언젠가는 바른 길을 찾는다 하여도 그 많은 허송세월을 어디서 어떻게 보상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스승 없이 홀로 깨닫고 혼자 걸어가겠노라 장담했었지만 결국은 먼저 걸은 선각자의 도움 없이는 곳곳에 위험 천만한 것이 바로 이 길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누구라도 마찬가지겠지만 나 역시 힘들고 고된, 그리고 길고 긴 여정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나의 삶은 조용하고 풍파없고 그런대로 팔자 좋아보이는 평범한 한 여자의 삶이겠지만 결코 남이 알 수 없는 나의 내면은 그야말로 목마르고 고달프고 허망하고 덧없고 외롭고 메마른... 그런 삶이었다. 그러나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물질과 현상에 기대지 않고 이 길을 끝까지 추구하여 마침내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하는 정상에 섰으니 남은 인생에 주어지는 내면의 평화와 행복을 생각하면 수백 수천배의 보상이 기쁘고 감사하기만 하다.

 

사실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있어 나의 스승은 수없이 많았음을 이제야 알게 된다.  수많은 영적스승들이 남긴 글, 발자취, 인터넷 사이트, 동영상, 그리고 모든 인연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나 또한 앞으로의 인연은 알 수 없지만 좀 더 성숙하고 익어간다면 이 길을 걷고자 하는 그 누구에겐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부족하나마 몇자 적어본다.

 

 

적천 선생님들 비롯한 비인나우의 모든 도반님들의 앞길에 부디 영광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댓글목록

태정이할배 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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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붕 님의 댓글


님의 평화에 저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금싸래기 님의 댓글


왜 눈물이 나죠?
가슴이 뛰어요.
님이 주신 영광을 기쁘게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무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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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석(윈드)님의 댓글


감사히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_()_

금미소님의 댓글


과거 몸담았던 종단도 그곳인것같고~
저하고 비슷한 공부여정을 가고 있는것 같습니다~~
감사히 잘보았습니다~()

無事人님의 댓글


기나긴 여정을 알뜰히 공유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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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